국책사업 갈등을 멈추는 새로운 길

우리 사회에서 대형 국책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반복되는 갈등은 이제 통과의례가 되었습니다. 충남 당진 (북당진-신탕정), 경남 밀양, 신고리 등 전국 주요 송전선로 경과지와 경기 하남 변전소 건설 등에서 겪은 갈등은 전국적으로 반복되는 국책사업 갈등의 일단에 불과합니다. 철도망 확충과 환경기초시설 건설부터 에너지 인프라 구축과 국방 안보 시설 운영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갈등이 동일한 패턴으로 날마다 되풀이됩니다. 왜 그럴까요? 믿기 어렵겠지만 그 핵심에 '보상'이 있습니다. 정부는 갈등의 강도가 세지고 장기화할수록 법률상 의무를 넘어 다양한 지원 패키지를 앞세우는데, 결과적으로 갈등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깊어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원자력발전소 계속 운전과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을 둘러싼 갈등 사례 역시 보상과 지원이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이젠 보상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증폭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보상의 개념은 지역을 사실상 '피해자'로 규정합니다.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님비 (NIMBY, Not In My Back Yard) 사업이니 돈으로 위무하려는 것이고, 삶의 질 저하와 안전에 대한 우려를 돈으로 덮으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논의의 초점은 공공사업의 애초 목적에서 벗어나 협상과 거래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여기에 지역 정치와 파벌 간 경쟁이 결합하면 반대의 동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럴수록 정부는 지원을 늘리는데 그 규모가 커질수록 일부 주민은 '더, 더'를 외칩니다, 보상이 아니라 환경과 안전과 지역공동체의 안녕한 미래를 주장하는 반대운동이 더 큰 도덕적 명분을 얻는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이들의 출현과 함께 반대 전선이 다변화되면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갈등이 교착상태에 빠지는 걸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보상은 이처럼 갈등을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갈등을 구조화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해외 사례는 전혀 다른 방향을 보여줍니다. 먼저 스웨덴입니다. 스웨덴의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관 SKB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 과정에서 '보상'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역과 국가가 함께 창출하는 공공가치를 강조했고, 이를 '가치 창출' 프레임으로 고도화했습니다. 지역의 교육·기술·안전 인프라를 어떻게 강화할지, 청년의 직업 기회를 어떻게 늘릴지, 연구기관과 산업 생태계가 어떻게 동반성장 할 수 있을지 주민들과 함께 논의했습니다. 지역 주민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 전략 프로젝트의 공동 설계자이자 미래의 파트너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갈등은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