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3시경 '파주 시니어 공간 나날 책방'에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책 <기후 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저자인 이송희일 감독의 강연 때문이다. 북토크가 끝난 이후 녹취를 풀고 글을 다듬는 사이 2주가 흘렀지만, 그날의 감동과 깨달음을 독자와 나누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동네 책방이 좋은 세상을 위해 길을 여는 작은 광장이 되기를 소망하는 나는 책방 개소식 이후 첫 북토크를 위해 고민하던 중 페북을 통해 이송희일 감독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침 전국을 돌며 기후 위기 관련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책을 주문했고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이 책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아주 예리하게 짚어주며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교사로 살아오며 환경과 관련된 책을 많이 접하였으나 그동안 본 책들과 여러 측면에서 달랐다. 기후 위기가 자본주의와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자의 통찰력 있는 분석과 여러 나라의 충격적이며 다양한 사례를 통해 더욱 명징하게 알게 되었다.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어른으로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앞서 '나날 책방'에 와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였고 감사하게도 그는 강의를 수락했다. 이런저런 준비 끝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았다. 그 결과 다양한 세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수능을 본 아이들,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는 제자들, 그리고 지인 및 SNS에서 웹자보를 보고 찾아오신 분들까지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책방 광장을 따뜻하게 지켰다. 이곳에서 함께 한 사람들만이라도 기후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연대하여 춤출 수 있다면 그만큼 세상은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 어떤 이들은 이 책을 매우 좌파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반 자본주의, 반 신자유주의, 반 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서술 되어 있기 때문이다. 7장까지 읽고 또 읽다 보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기후 위기를 단순히 '날씨의 변화'나 '개인적 실천의 문제'로 보지 않고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을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식민지 주의가 결합 된 구조적 폭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아주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공포를 조장하고 이념의 대립을 부추기는 책이 아니라 인류가 어떻게 전환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책이다. 저자는 기후 변화가 개인의 텀블러 사용이나 분리수거 부족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욕과 성장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경제는 무한 성장을 하려고 하니 지구가 병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아주 자세하고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오직 무한 축적의 욕망과 이윤 추구를 위해 달리는 거대 독점 기업과 산업들이 주범이다. 저자는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는 기후 위기를 가속화 한 주범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탄소 배출을 규제하기보다 '금융화' 하려는 시도가 결국 생태적 재앙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북반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누리는 편리함은 남반구의 자원을 약탈하고 그곳에 오염 물질을 떠넘긴 '식민지적 약탈'에 기반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한 예로 전자 쓰레기의 '식민적 이주'다. 북반구 소비자들이 1~2년마다 교체하는 최신 스마트폰과 노트북은 버려지는 순간 남반구로 향한다. 사례로 가나의 최대의 전자 쓰레기 하차장인 '아그보그블로시'가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 건너온 엄청난 양의 전자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현지 아이들과 노동자들이 유독 가스를 마시며 전선을 태워 구리를 추출하고 있다. 북반구는 '재활용'이라는 명목으로 쓰레기를 수출하지만 실제로 그 오염 물질(납, 수은 등)은 남반구의 토양과 사람의 몸 속에 쌓이고 있다. 이것을 전자 쓰레기의 '식민적 이주'(Waste Colonialism)라고 한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저렴하고 유행에 민감한 북반구의 의류 소비는 남반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는 전 세계에서 버려진 중고 의류들이 산처럼 쌓여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또한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들은 북반구 브랜드의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임금 노동을 착취하고 염색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폐수를 그대로 강에 흘려보내고 있다. 북반구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편리를 누리고 남반구는 '식수 오염'과 '거대 쓰레기 산'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 식량 식민주의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사례들을 통해 기후 위기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어져 온 외부화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죄책감을 개인들이 나눠 가져야만 하는가?라고 저자는 질문하듯 묻고 있다. 왜 기후 불평등을 이야기 하는가? 기후 위기는 모든 인류에게 닥친 위협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결코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이를 '기후 불평등'(Climate Inequality) 또는 '기후 부정의'(Climate Inequality)라고 부른다. 저자는 기후위기의 결과가 왜 가난한 나라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먼저 그리고 더 가혹하게 찾아오는지에 대한 문제를 강조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