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4세의 나이에 부산 지역의 한 산모·신생아 돌봄 서비스 기관에 입사한 저는 어느덧 9년차 산모신생아건강관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육아가 끝난 후 공허했던 마음을 채운 이 일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였습니다. 스물세 살에 결혼해 이듬해 첫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뭣 모르던 어린 엄마였던 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오로지 사랑과 정성만으로 키우려 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춥지 않게 하려고 두껍게 덮은 이불 때문에 아기 얼굴에 땀띠가 가득 피었던 일, 젖병을 열탕 소독하다 잠깐 졸아 태울 뻔했던 일, 천 기저귀를 세제에 열심히 빨았더니 아기 피부에 발진이 올라왔던 일까지, 실수도 잦고 걱정도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 유행하던 '다이애나 육아백과'를 펼쳐놓고 아기 변을 살피며 갸웃거리던 날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남편도 저도 첫아기를 키우는 초보 엄마 아빠였기에, 아기가 배가 고파 우는 건지, 기저귀가 젖어서 그런 건지, 아픈 건 아닌지 매일매일 노심초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날마다 지쳐갔지만, 아기 눈빛 하나, 손가락 꼼지락 하나에 다시 힘을 내곤 했습니다. 첫째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저는 둘째 딸을 낳았습니다. 여전히 작은 몸에 여린 아기를 안고 있는 저는 두렵고 조심스러웠습니다. 남편은 바쁜 일로 집을 자주 비웠고,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은 거의 저 혼자였습니다. 둘째가 첫걸음을 떼던 날, 저는 기쁨에 울음을 터뜨렸고, 큰아이가 동생을 처음 안고서 함박 웃음을 지을 때에는 가슴이 벅찼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도 육아의 어려움은 계속됐습니다. 아프면 밤새 물수건을 갈아가며 열을 재우고, 이유식을 만들다 국을 넘겨 냄비를 태운 날도 있었고, 학원비가 부족해 제 옷을 사는 건 늘 뒷전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키운 딸들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자라 결혼하고, 큰딸은 8살 손녀를, 작은 딸은 3살 손자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을 때, 저는 비로소 저의 지난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역신문에서 '산모신생아관리사' 양성 교육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갓난아기와 산모를 돌보고, 수유를 돕고, 신생아 목욕을 시켜주는 일이라는 설명에,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육아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 따뜻한 손길을 다른 엄마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지역 여성 인력 개발기관에 등록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담당 강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이 일은 나에게 딱 맞는 일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고, 교육 수료 후 직접 찾아뵙고 입사 의사를 전했습니다. 처음 파견을 나갈 때는 긴장과 떨림의 연속이었습니다. 길치인 저는 딸들이 보내준 지도를 보며 하루 전에 미리 연습하러 다니기도 했고, 산모님께 보내는 첫 문자를 몇 번이나 고쳐 썼습니다. 유튜브로 목욕법, 응급처치법, 기저귀 갈이 등을 반복 연습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줍게 파견지에 방문해 산모를 딸처럼 보살피고, 오가는 정에 감동하다 보니 어느덧 9년 차 파견직 관리사가 되었습니다. 프리미엄이라는 딱지와 함께 자부심도 함께 얻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백 명의 산모와 아기를 만났고, 그 기억 중에는 따뜻한 장면들도 참 많습니다. 조리원을 퇴원하는 산모의 떨림 가득한 눈빛을 보면, 39년 전 제 모습이 떠오르고, 아기의 작은 웃음에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어떤 산모는 저를 꼭 안고 펑펑 울며 "이모님, 덕분에 정말 큰 힘이 됐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땐 저도 참았던 눈물을 닦으며 등을 토닥여 줍니다. "잘하실 거예요. 순한 아기니까 잘 자랄 거예요." 그런 것이 이 일의 큰 동력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마냥 따뜻하고 예쁜 순간만으로 채워지진 않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동료 관리사 대부분은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 전부인 사람들이라, 전문적인 비즈니스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회사에서 시켜주는 교육을 받으며 자격을 갖췄다 해도, 요즘 산모님들 눈에는 어딘가 촌스럽거나 세련되지 못한 응대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산모님들이 관리사에 대해 구체적인 요청을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 적은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요리는 잘하셔야 해요." "청소도 꼼꼼히 해주셨으면…"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