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25년의 달력은 거의 남지 않았다. 남은 날짜를 손으로 짚어보며 지난 한 해를 되짚는다. 올해 내가 내세운 목표는 한 가지였다.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 하지만 성숙함은 나이를 채운다고 자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길 위에서 배회한다. 그래서 다가오는 2026년에도 목표는 같다. 조금 더 성숙해지는 것. 그렇다면 성숙함이란 무엇일까. 어릴 적 가장 듣기 싫었던 말들이 있다. "니가 뭘 안다고 까불어. 새파란 것이." "어디서 말대꾸야?" 말은 짧았지만, 그 말끝은 길게 남았다. 그 말 안에는 '너는 아직 사람 대접을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선 긋기가 들어 있었다. 질문하면 '말대꾸한다' 했고, 이해가 안 되면 '까불지 말라' 했다. 그때의 나는 이해받고 싶었지만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받은 상처는 말없이 오래 남는다. 이런 말은 종종 존중 대신 서열이 작동하는 순간에 튀어나온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위치가 낮다는 이유로, 말할 자격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돌아보면 그 말들 속에는 나를 멈춰 세우려는 마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을 향해 열린 길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새해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 나의 관점만으로 상대를 단정하지 않고, 상대의 시선으로 나를 비춰보는 시간을 더 갖고 싶다. 다름을 틀림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말에도 입장과 온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 그것이 내가 올해 붙잡은 성숙함의 이미지다. 어린 시절 읽었던 조병화 시인의 시 '의자'가 떠오른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에 대한 화자의 따뜻한 허용의 자세가 마음을 적셨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말대꾸야, 쥐뿔도 모르는 새파란 것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듣던 우리에게 '의자'의 화자는 진정한 어른의 의미와 자세에 대해 조곤조곤 알려주는 것 같아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 시는 단순한 환대가 아니라 어쩌면 '나의 자리를 비워주는 용기'에 대한 기록과 같다.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