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Lupin)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밈(meme)으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월급 루팡'이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의 책무는 다하지 않은 채 잇속만 챙기는 무임승차자를 일컫는 의미로 통용된다. 맡은 일은 제대로 안 하는 주제에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가는 괴도 아르센 루팡같은 도둑놈 같다고 해서 유래된 말이다. 아르센 루팡(또는 뤼팽)은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 '아르센 루팡 Arsène Lupin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태를 대하는 쿠팡의 대응을 지켜보며 나는 이 '루팡'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키고도 진정성 있는 사죄나 책임은 없었고, 대신 발뺌하고 미국 정치권에 로비해서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얄팍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것으로도 안 되니 보상으로 포장한 기만적인 상술로 고객의 지갑을 다시 노리는 행태를 보면, 그나마 신사의 모습을 보였던 괴도 아르센 루팡보다 더 뻔뻔한 쿠팡의 루팡짓은 도를 넘었다. 사태가 커지자 쿠팡은 최근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자체 조사 결과와 보상안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통해 어제(29일) 공시했다. 쿠팡은 보고서에서 "3300만개 계정에 접근이 있었으나, 범인이 실제로 저장한 데이터는 약 3000건에 불과하다"고 명시했다. "회수된 기기 분석 결과, 유출된 데이터가 제3자에게 공유되거나 전송된 증거가 없다"며 제3자 유출도 없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공시에는 한국 민관합동조사단과 규제 당국이 이러한 수치에 대해 '쿠팡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다는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쿠팡이 '셀프 조사'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하며 수천만 명의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와중에, 가해 당사자인 기업이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 피해가 경미하다고 축소 발표한 셈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즉시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부 합동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쿠팡이 사고 범위를 축소 발표한 것은 향후 싸움의 장기화에 대비한 전략이다. 오늘(30일) 오전 '쿠팡 사태 범정부 TF' 팀장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범위가 3300만 건 이상이라고 밝혔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