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러분 손에 지역을 살릴 10만 원이 주어져 있다. 단 오늘(31일) 밤 11시 30분까지 쓰지 않으면 이 돈은 사라진다. 여러분은 이 10만 원을 어디에 쓰겠는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2023년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되면서 올해로 벌써 세 번째 지역을 살리는 데 쓸 수 있는 10만 원이 정말로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모두에게 주어졌다. 우리들 모두가 이 돈을 잘만 모아주면 병원이 없는 농산어촌에 소아과가 생길 수도 있고, 주인에게 버려졌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유기견도 살릴 수 있다. 지금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서, 또는 아주 오랫동안 꾸준하게 예산이 들어가야 해서 정부와 지자체가 꺼리던 사업들을 이 돈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이 돈을 모으는 데 힘을 보태는 건 경제활동인구 서른 명 가운데 한 명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머지 스물아홉 명은 이 돈을 제때 쓰지 않아 지역을 살릴 소중한 자원이 그대로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 해 12조 원 모으는 일본의 고향납세제 2025년 올 한 해 이렇게 모인 고향사랑기부금은 지난 15일 기준으로 1000억 원을 넘어섰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23년에 651억 원이 모였던 걸 생각하면 3년 사이 제법 많이 늘었다. 다시 말하지만 서른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모은 돈이 이 정도다. 그러니 만약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2970만 명이 모두 10만 원씩만 모으면 자그마치 3조 원에 달하는 돈이 지역을 살리는 데 값지게 쓰일 수 있게 된다. 알다시피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의 고향납세제를 본떠 만들었다. 주소지가 아닌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는 제도로, 기부금 10만 원까지는 이듬해 연말정산 때 전액 세액공제로 돌려받는다(1인당 연간 500만 원까지 가능). 여기에 기부액의 30%에 해당하는 답례품도 받을 수 있으니 10만 원을 기부하면 13만 원을 돌려받는 셈이다. 이렇게 모인 돈은 지자체가 지역 주민의 복리 증진과 지방소멸 대응 사업 등에 쓸 수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15년 앞서 2008년에 고향납세제를 시행했다.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와 지방 세수로 이른바 '지역 소멸' 위기감이 일본 사회를 짓누르던 때였다. 일본 정부는 지자체 스스로 길을 찾도록 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한 번도 낮은 재정자립도나 적자를 걱정해 본 적 없는 지자체들에 처음으로 새로운 예산(기부금)을 마련할 권한을 주면서 서로 경쟁하고 또 살아남도록 했던 것.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일본에서 한 해 고향납세제로 모이는 기부금은 자그마치 우리 돈으로 12조 원에 달한다. 우리와 인구나 예산 규모가 다르다고 해도 우리보다 한참 앞서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일본에선 어떻게 고향납세제가 이렇듯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의 역할을 인정하고 민간이 여러 영역에서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덕분이다. 민간이 운영하는 플랫폼과 시민 사회 조직들이 주도하는 '지정 기부 사업'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처음 몇 년간 지지부진하던 일본의 고향납세제도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