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을 기억할 권리와 책임

어릴 적엔 연말이면 엄마 손에 이끌려 목욕탕엘 갔다. 콩나물시루처럼 바글바글한 대중탕 한 편에 피난민처럼 옹색하게 자리를 잡고 어머니는 일 년 치 묵은 때를 몽땅 벗겨낼 기세로 살갗이 벌게지도록 때수건을 밀어댔다. 한바탕 소동 끝에 멀끔히 씻고 돌아와 깨끗한 내복으로 갈아입고 풀 먹여 빳빳이 시침질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 그게 새해를 맞이하는 나름의 의식이었다.예전 풍습은 사라졌지만 해가 바뀔 무렵이면 뭔가 묵은 걸 털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냉장고도 비워내고 책상 서랍도 정리한다. 핸드폰 전화번호 목록을 훑어보며 간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