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노리는 트롤과 붉은 손을 가진 레닌 지난 12월 24일, 차를 타고 이동 중에 공사로 길이 막힌 길을 우회하자 다리 아래 끝 구석에 한 괴물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왼손에 폭스바겐 비틀을 움켜진 외눈박이 괴물이었다. 설명문을 보니 이 지역, 프리몬트(Fremont)의 예술위원회에서 예술을 통해 지역의 소속감 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공모를 했고 지역 주민들이 후보작 투표를 통해 선정하고 자원봉사자들이 도와 철근 콘크리트로 제작했다고 했다. 오로라다리(Aurora Bridge) 아래의 이 공공 조각상의 이름은 '프리몬트 트롤(Fremont Troll)이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전설의 거인족 괴물인 트롤은 거인족, 요툰(Jötnar)의 후손으로 신들과 대등한 힘을 가진 자연의 혼돈을 지배하는 괴물이다. 신들과 전쟁에서 패한 뒤 동굴로 숨어들어 마을을 습격하거나 인간을 잡아먹는다. 프리몬트 사람들은 합의를 통해 이 흉측한 괴물을 다리 아래에 설치한 다음 이 트롤이 지나가는 차를 잡아먹는다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 트롤에게 자동차가 제압당하기 전에 재빨리 벗어나 두 블록쯤 가면 팔에 빨간 페인트를 묻힌 큰 조각상이 나타난다. 레닌 동상(Statue of Lenin)이다. 무게 7톤에 높이가 5m에 가까운 이 동상은 책을 들고 있거나 손을 흔들거나 연설을 하는 모습들과는 달리 총과 불꽃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레닌의 폭력적 혁명성이 묘사된 유일한 조각이라고 한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동상이 왜 프리몬트의 중심부에 있는가? 동지가 지나고 맑은 날이 잦아졌다. 어제(12월 28일)도 해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기온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1°C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집을 나섰다. 햇살이 아까워서였다. 시애틀에서 가장 시애틀 다운 감성과 정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우리 생각에 그곳은 지나는 차를 노리는 트롤이 있고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가 있는 프리몬트라고 여겼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먼저 레닌 동상을 찾았다. 프리몬트 상공회의소에서 세운 이 조형물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논의가 서술된 표지판이 청동상 옆에 서있다. 워낙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도 '프리몬트 레닌 동상'의 기묘한 사연은 시애틀 사람 대부분이 알고 있다. 레닌이 이 동네를 알린 셈이다. 슬로바키아의 조각가 에밀 벤코프(Emil Venkov)가 제작한 이 청동상이 1988년에 포프라드(Poprad)에 세워졌지만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레닌 동상들은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고 이 동상도 그 운명을 따랐다. 포프라드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시애틀 동쪽 이사콰(Issaquah) 출신의 루이스 카펜터(Lewis Carpenter)가 고철더미속에서 이 동상을 발견하고 독창성에 매료되어 포프라드시와의 협상을 통해 구입했다. 그는 이사콰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동상 구입비보다도 많은 비용을 들여 미국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자신이 운영하려던 레스토랑 앞에 전시할 계획이었지만 이사콰시가 허락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그 계획들은 무산되었다. 가족들이 매물로 내놓았지만 둘 곳이 없어지자 프리몬트의 주물공장으로 보내졌다. 이 주물공장의 설립자이자 프리몬트 예술가 피터 베비스(Peter Bevis)가 이 동상이 녹여질 위기에서 구조해 현재의 위치에 세웠다. 이사콰에서 수용을 거부한 공산주의 지도자의 동상이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보헤미안 동네에 등장한 이후 정치적 상징과 예술작품이라는 의견이 격돌했다. '폭력의 상징'으로 여기는 우크라이나와 동유럽계 주민들은 철거를 요구했고 예술계 쪽에서는 '역사적 유물의 철거는 기억을 지우는 것'이며 이것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맞섰다. 이런 논란이 프리몬트의 기묘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종종 붉은 페인트로 훼손되거나 풍자적 오브제로 시즌마다 다양하게 장식되면서 여전히 구매자를 기다리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