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참혹해진 까닭...
공부는 왜 '차별 합리화'의
근거가 됐나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아이들의 절규.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교육개혁을 앞세우는 이유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로 진급할수록 아이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낮아진다는 건 여러 통계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바다.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는 군 생활 버금가는 인내와 극기의 훈련장이다. 교육개혁의 성공 여부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확인된다.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 곧, 액자 속 교훈으로만 머물렀던 '즐겁고 보람찬 학교생활'을 제대로 구현하는 게 교육개혁의 본령이다. 교육개혁의 성공을 위해선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먼저다. 노파심에서 전제한다면,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면 필패다.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이 매번 용두사미로 끝난 것도 그래서다. 대한민국의 '교육개혁사'는 학교 현장을 모르는 교육 전문가들의 탁상공론을, 보고서 작성에 이골이 난 관료들이 새 교육과정으로 포장해 상명하달식으로 일괄 적용해 온 역사나 다름 없어 보인다. 교육개혁의 세부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는 아이들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맞다. 아이들의 '즐겁고 보람찬 학교생활'을 방해하는 요소와 영향의 인과관계를 따져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대안이 도출될 수 있다. 학계와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한 공청회는 그다음이다. '중위권' 학생이 사라진 학교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을 앞둔 지금, 수업하다 말고 한 반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이 만족스러운지 물었다. 뜬금없는 교사의 발문에 이구동성 "이 세상에 좋아서 학교 다니는 학생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대답했다. 그들의 심드렁한 답변에는 짜증 섞인 표정과 피곤함만 가득하다. 그나마 학교생활의 버거움을 달래주는 건, 친구들과의 운동과 수다, 무엇보다 점심 급식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학교 밖에는 함께 놀 친구가 없고, 끼니를 스스로 챙겨야 해서 불편하다는 뜻일 테다. 학교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배움의 즐거움'을 손꼽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학 진학이 당연시되는 분위기 속에 학업 성적에 대한 부담이, 예상했던 대로 학교생활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절대적인 요인이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은 백번 지당하지만, 생략된 단어가 있다. 공부 앞에 '대입'을 넣어야 완전한 의미의 문장이 된다. 아이들에게 대입을 위한 공부 외엔 '딴짓'일 뿐이다. 곧, 교육개혁의 고갱이는 아이들의 학업 성적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오로지 대입을 위한 맹목적이고 획일적인 공부를 강요하는 학교에선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1등은 1등을 놓치게 될까 불안하고, 꼴찌는 종일 무의미한 수업 시간을 견뎌 내야 하는 게 고통스럽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