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다섯 달, '퇴사 한다'는 후임의 전화를 받았다

열 아홉살 때부터 직장 생활을 했다. 햇수로 30년이다. 짧은 기간의 계약직을 제외하면 정규직으로 세 번 이직을 했다. 이직할 때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냈다. 물론 함께 일을 하면서 모든 게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맡은 업무로 갈등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다. 인간적인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이직할 때는 그동안의 열정과 노력에 대한 위로와 격려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지만 가장 최근에 다녔던 회사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퇴사 후 다섯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퇴사한 회사의 후임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처럼 업무 관련 전화가 아닌, 상당히 떨리고 분노가 섞인 목소리였다. "김 실장님, 저 9월 말까지만 하고 여기 그만둘 거예요." "네?" "정말 힘들어서 더는 못 참겠어요." 퇴사한 직장의 후임이 전임자에게 전화해 자신의 퇴사를 알리는 상황이 조금 놀랍고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에 그의 퇴사 소식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후임과 1시간 30분 정도 통화를 했다. 후임은 지난 5개월 동안 회사 대표인 A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쏟아냈다. 그의 이야기는 내가 1년 4개월 동안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압축해놓은 듯했다. 자기 빌라를 사라던 대표 A는 내가 1년 4개월 동안 일을 했던 회사의 대표다. 회사는 정규직과 계약직을 포함해도 열 명이 되지 않는 소규모다. 나는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입사 후 처음 몇 달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다며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잔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A는 은행과 지인들에게 대출을 알아보러 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잔금이 부족했다. A가 살던 빌라도 부동산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내게 그의 빌라를 사라고 권유하기 시작했다. "김 실장이 우리 빌라 사는 거 어때?" "네, 제가요?" "우리 빌라 살기 좋아. 주변 환경도 깨끗하고. 한 번 생각해 봐." 나는 전세로 살고 있다. 집을 살 여유도 생각도 없었다. A에게도 명확히 말했다. 처음엔 A의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결심만 하면 오늘 당장이라도 계약할 만큼 진심이었다. 나는 A에게 빌라를 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압박감이 심했다. 나중엔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대표의 친척)조차 "대표님 그만 하세요. 실장님 스트레스 받아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A에게 받았던 가장 약한 스트레스였다. 무너지는 자존감 일하는 동안 A의 업무 지시와 방식에서 여러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이 있었다.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수 있는 사안도 있었다. 회사 생활이 다 그런거니 참을 것은 참고 이해할 것은 이해하면서 내게 주어진 업무를 했다. 그러던 중 직원들의 근태 건으로 A와 갈등이 있었다. 나도 잘못이 있었고 A도 잘못이 있었다. 근태 문제는 임직원 모두 잘못이었다. 그런데 A는 자신과 다른 정규직 직원(친척)의 잘못은 문제삼지 않고 내 근태만을 문제 삼았다. 그 문제로 직장 생활 처음으로 시말서를 썼다. 그 뒤로 A의 은근한 무시와 조롱, 뒷담화가 이어졌다. 그나마 위안은 A의 뒷담화 대상은 그의 친척 직원 포함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퇴사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일을 할수록 나의 자존감은 무너졌다. 이전 직장에서 십오년 가까이 장기 근속을 할수 있었던 것도 돈 보다는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한 달 뒤 내가 맡고 있는 중요한 업무가 있었지만 A의 무시와 조롱, 뒷담화, 그리고 과도한 업무지시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내 무너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번엔 무책임해지기로 했다. 문제는 남은 연차 사용건이었다. 남은 연차가 8.5개였다. A는 내가 사직서를 쓰기 전까지는 연차를 요청할 때마다 승인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퇴직의사를 밝힌 뒤로 남은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