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날이 밝았다. 익숙했던 2025년과의 이별 연습을 했음에도, 2026년 새 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는 것은 한동안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 벌써, 작년이라 호칭하는 2025년,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라는 말을 뽑았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 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이란다. 그런데 지나간 세월 중 멈추어서 우리를 기다려 준 적이 있던가. 원래 세상이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며 변하는 거지... 나 혼자 중얼거렸다. 특히 12.3 내란 사태 이후 어느 누구도 멈춘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내 평생, 그렇게 역동적인 세상의 발을 디뎌본 적이 없을 만큼 정말 다사다난 했던 지난 해를 보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바빴다. 환갑을 맞으면서, 새 집터 하나를 꿈꾸었고, 이왕이면 세 평짜리 말랭이 책방보다 조금만 더 큰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던 중, 정말로 노년기에 살고 싶은 새 터를 마련했다.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결혼 후 아이들과의 추억이 가득했던 그곳을 팔아 주택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내 맘대로,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주 얼굴 보며 사는 것. 그것이 최고의 바람이었다. 주택의 거실에 책방 형태를 꾸미고 이층 다락방에 주거용 살림 몇 가지를 올리는 것으로 이사는 끝났다. 지난 4년 동안 말랭이 입주작가로서, 또 책방지기로서 다져 놓은 토대를 아랫마을로 가져온 것이다. 말랭이 마을에서 어머님들과 함께 시 공부, 문해공부, 말랭이축제, 여행 등 셀 수 없이 많은 추억들을 다 놓고 내려올 때는 정말 마음이 묘하게 아파왔다. 하지만 새 집을 본 어머님들은 정말 잘 한일이라고 축하해 주셨고, 같은 동네라 또 다시 긴 인연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고마울 뿐이다. 새롭게 문을 연 동네 책방 '봄날의 산책'은 우리 부부의 노년기 경제적 문화적 삶터다.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문화 중심으로 자리하고 싶어서 '군산인문학당'이라는 비영리 문화 단체를 함께 운영한다. 4년 책방지기를 해보니, 책을 팔아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독립체를 꾸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난 늘 꿈꾸며 희망했다. '이곳에 문학과 문화의 미를 찾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소망을 담아 책방은 이제 대표적인 '군산동네책방'이라는 고유명사를 얻고 싶어한다. 특히 이곳의 주인은 한 명이 아니다. 학당에 들어온 모든 학인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즐겁게 공부하며 문화를 이끄는 주인으로 함께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평생공부를 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네책방이 펼친 보금자리에 인문학당이 들어선 지 이제 1주일. 10여 개의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학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학당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학인들의 재능과 부지런함은 가히 기가 막힐 정도로 감탄스럽다. '시인과 작가의 초대' '매일 시 필사' '디카시 창작반' ' 에세이 창작반' '펜화 그리기' '영어 회화방' '몸을 살리는 운동방' 심지어 '가야금병창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영역의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이중 '시 필사 동아리'는 작년 1년 동안 '시 삼백 필사반'이 보여준 시의 세계와 필사의 저력 덕분에 학인들이 가장 많이 도전하는 반이다. 시 필사로서 올해 시 공부도 하고 자신의 끈기도 보여주고 싶어하는 학인 10인이 매일 10편의 시를 올릴 것이다. 학당의 다른 분들은 하루에 최소 10편의 시를 읽는 호사를 누릴 것이니 이보다 더 행복한 마당이 어디 있으랴.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