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 얼굴 둥둥, 물류 알바 하다 식겁한 이유

(이전 기사 : 두 시간 전에 확정 연락, 쿠팡 알바 이건 좀 너무 했네 ) PDA(개인용 단말기) 사용법 교육을 들은 후로는 현장으로 이동했고, 관리자가 직접 PDA를 찍으면서 진열 업무를 어떤 식으로 하면 되는지 선보였다. 토트 위에 있는 물건의 바코드를 찍고, 진열 가능한 선반 위치의 바코드를 찍고, 진열하는 수량이 정확히 몇 개인지까지. 토트 안에 들어간 모든 상품을 진열하게 되면 '토트 비움'을 누름으로써 한 토트를 마무리 짓고, 그렇게 여섯 토트를 작업하면 하나의 카트 업무가 마무리되는 식이었다. 다만 진열에는 나름의 조건이 있었다. 한 선반에는 최대 6종의 상품만 넣을 수 있고, 진열할 때는 한눈에 모든 상품이 들어와야 하며, 여러 개의 상품을 진열할 때는 가로가 아닌 세로로 쌓고, 바로 옆이나 위아래 선반에는 같은 물건을 진열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단순히 A라는 장소에 A라는 물건을 적재하며 수량 관리를 하는 거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PDA로 바코드를 찍어보고 진열할 수 있는 선반이 있으면 어디든지 물건을 진열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바코드는 그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물건 살 때만 주로 접할 뿐이었는데, 이렇게 위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순간 바코드의 활용성이 생각보다 무척 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곳에서 다루는 물건들은 확실히 지난번 센터에서 다루는 물건들에 비해 작은 게 많았다. 간식이나 볼펜, 식탁 매트, 운동화, 장갑 등 실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물건들이었다. 지난주 워터 업무에 비하면 걷는 양도 훨씬 적었다. 다만 카트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토트 여섯 개를 올려야 하다 보니, 그때 조금 허리가 아파오긴 했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으면서 일을 하는데, 막상 진열 업무도 쉽지만은 않았다. 쉽지 않은 진열 작업 무엇보다 진열 가능한 선반을 찾는 게 어려웠다. 바코드로 선반을 찍어 보면 이미 6종의 상품이 있어 진열할 수 없다는 문구가 뜨기 일쑤였다. 진열이 가능한 선반이라 하더라도 평소 정리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입고팀 진열 업무는 테트리스처럼 조각을 잘 맞춘다든지, 책장 정리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다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1시간 정도 일해 보니 그 말이 무슨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정리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좁은 선반 안에 여섯 가지 종류나 되는 물건을 한눈에 잘 보이게 하는 일은... 결국 지시 받은 업무 내용과는 다르게 어떤 물건은 가로로 진열을 하기도 하고, 어떤 물건은 안 보이게 구석 깊숙이 넣게 되기도 한다. 진열하면서도, 아아 이거 아닌데, 이래선 안 되는데, 이러면 출고팀에서 물건 찾기 어려울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물량은 도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버린다. 크게 실수할 것 없이 몸만 쓰면 되던 워터 업무와는 다르게 PDA를 다루는 일은 사람을 약간 긴장 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진열 상품으로 까만색 장갑이 있었는데 한 토트에 총 40켤레가 있었다. 한 선반에 40켤레의 장갑을 모두 진열하긴 어려워서 비어 있는 여러 선반을 찾아 진열했는데, 장갑 하나가 모자랐다. 그러니까 토트 안에 장갑은 40켤레라고 되어있었는데, 내가 PDA로 바코드를 찍은 것은 총 39켤레였던 것이다. 장갑 한 켤레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일단 토트는 비어졌으니 PDA 안에서 '토트 마감' 버튼을 눌렀는데, 이내 PDA에서 빨간색으로 안내 문구가 떴다. '이경화님 지금 중앙 관리 데스크로 오세요.' '관리자에게 PDA를 반납하세요.' 내 손안에 들려있는 PDA를 반납하라니. 어린아이가 인형을 빼앗기듯, 비슷한 박탈감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나 큰 잘못을 지은 것인가 싶은 마음에 중앙 관리자 데스크로 갔다. 한 관리자에게 "제 PDA에 이런 문구가 떠서 왔는데요" 했더니, "네, 제가 사원님 부른 거예요" 하는 말과 함께 신경을 좀 써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행히 PDA를 빼앗기지는 않았다. 도대체 장갑 한 결레는 어디로 간 걸까. 내가 바코드를 하나 덜 찍었을 수도 있겠지만, 토트 안에 실릴 때 이미 하나가 빠졌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내 탓이겠거니 하는 마음과 함께 그래도 혹시 내가 억울한 상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