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와 옥바라지 마을동서양을 막론하고 형벌 제도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육체에 직접 고통을 가하는 ‘신체형’ 중심에서 근대 이후 구금을 통해 자유를 제약하는 ‘자유형’ 중심으로 변화했다. 19세기 말 조선도 형벌 제도의 근대화를 위해 서양식 감옥 건립을 모색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이런 중에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 이른바 ‘정미7조약’을 강제 체결했다.》한일신협약의 핵심은 각 부 차관을 비롯해 정부의 주요 관직에 일본인을 직접 임명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뿐만 아니라 내정도 실질적으로 장악해 나갔다. 이때 법부 차관으로 부임한 도쿄공소원 검사장 출신 구라토미 유자부로(倉富勇三郞)는 일본 가나자와 감옥 전옥(典獄·형무소장)이었던 가미노 다다다케(神野忠武)를 법부 서기관으로 기용했다. 일본식 감옥 행정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구라토미와 가미노가 주도해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