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를 더 채우려 든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적고, 결심을 단단히 묶는다. 그런데 나는 정반대로, 채우는 대신 '비우기' 쪽으로 시작했다. 마음을 먼저 비웠다. 생각을 조금 줄이고, 감정을 덜어냈다. 말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용히 나를 비우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옮겨갔다. 서랍을 열고, 오래 쓰지 않은 물건들을 하나씩 꺼냈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던 것들, 언젠가 쓰겠지 하고 쌓아두었던 것들 말이다. 결국 안 쓰고 유통기한만 지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이름을 붙이자면 '미니멀 라이프' 지만, 실제로는 대단한 철학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숨이 조금 더 쉬어지는 기분이 좋았다. 집이 가벼워지자 내 시선에 여유가 생기고, 마음도 가뿐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비우다 보니, 문득 마지막으로 남은 게 눈에 들어왔다. 비워지지 않은 것, 바로 내 몸이었다. 나이는 숫자라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 계단 몇 개에 차오르는 숨, 바지 허리에서 느껴지는 묘한 압박감. 다이어트라는 말은 너무 흔해졌고, 운동이라는 단어는 늘 내일부터로 미뤄졌다. 그렇게 '언젠가 하겠지'를 수십 번 말하다가, 2026년 1월 1일이 됐다. 새해 첫날, 나는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대단한 결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소박했다. "일단 3일 만 해보자." 작심삼일이면 어떠냐. 또 3일 하면 된다. 그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5일째 아침이다. 아직 한 달은 멀었지만, 적어도 이번엔 시작만 한 사람은 아니다. 바람 부는 제주에서, 밖 대신 집 안을 선택하다 제주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거긴 겨울에도 따뜻하잖아." 실제로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들도 며칠간은 제주의 날씨를 찬양했다. 햇살은 부드럽고, 바깥에서 커피를 마셔도 손이 시리지 않았다. 이런 데서 살면 매일 산책하겠다는 말도 쉽게 나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며칠짜리 제주이다. 지금의 제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바람은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분다. 우산은 무용지물이고, 모자는 자꾸 날아간다. 눈은 하루 종일 내리지만 햇살 덕에 쌓이지 않는다. 녹았다가 날리고, 다시 흩어진다. 밖을 걷는 일이 낭만이 아니라 용기처럼 느껴지는 날씨가 된다. 이런 계절의 제주에서 밖에서 운동하기는 쉽게 포기하게 된다. 제주에 산다고 해서 늘 자연 속에서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집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 시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