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산에 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하제마을 팽나무와 수라갯벌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품고 부지런히 팽나무와 수라를 만나왔다. 황석영 선생이 팽나무를 주인공 삼아 소설을 쓸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몹시 신이 났다. 비상계엄 내란으로 집필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할매>는 지난해 12월에야 출간되었다. 두근거리며 책을 펼쳤고 몇 시간을 집중하여 끝까지 읽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인가, 아쉬움이 먼저 왔다. 팽나무 이야기, 수라갯벌 이야기, 배동수와 유방지거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과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단장,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모임의 구중서 사무국장과 평화바람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자세하지 않았고, 충분히 뜨겁지 않았기에 밀려드는 아쉬움이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책을 다시 펼쳤다. <할매>를 문학 작품으로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현장에 너무 가까이 머물러 있는 탓에 하제 팽나무와 수라갯벌을 보존하기 위한 객관적 근거 자료와 역사적 배경, 주장과 열의가 담긴 논픽션을 기대했음을 깨달았다. 새벽빛을 받으며 천천히 읽어나갔다. 담담하고 치열하고 장엄했다. 내 안으로 커다란 무엇인가 밀려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하며 너울댔다. 압도적인 생명 서사를 읽는 감동은 크고 벅찼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읽어야 했다. 자칫 선을 넘어가면 과하게 몰입하거나 무심하게 초연해져 길을 잃기 때문이다. 마치 평균대 위를 걸어가듯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길을 문장 속에서 찾아야 했다. 코어에 힘을 주면 몸이 휘청이지 않는 것처럼 단단하게 몸을 세워줄 중심이 필요했다. 새벽 어스름에서 찾아낸 나만의 중심점을 하나씩 풀어내 보고자 한다.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황석영 작가의 새 장편소설 <할매>의 첫 문장은 평범하고 심심해 보여 가볍게 지나쳤다. 이상하게도 다른 문장을 읽으면서 자꾸 첫 문장이 생각났다. 한 문장을 읽고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와 읽었다. 한 문단을 읽고 또 첫 문장으로 돌아와 다시 읽었다. 읽기를 반복하니 첫 문장의 활자가 여러 번 덧칠한 것처럼 굵고 두꺼워 보였다. 새의 시선으로 읽다 처음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리 위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의 모습을 떠올렸다. 올려보면 이미 날아가 자취를 감춘 어떤 새 한 마리. 비슷비슷해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아무런 새를 떠올리며 이어 읽었다. 다음 문장은 산맥과 산과 언덕, 숲과 습지와 강의 모양을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지도를 펼쳐보듯이 땅의 굴곡을 읽어내는 문장이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