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의 향연 51] 정조의 '문체반정' 맞선 이옥의 글쓰기

조선왕조 시대에 두 차례 반정(反正)이 있었다. 반정이란 바른 것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 담긴다. 인조반정과 중종반정이 이에 속한다. 이같은 두 반정 외에 '문체(文体)반정'이 있었다. 정조 16년(1792)이다. 이 반정은 국왕 정조가 주도하였다. 친위쿠데타인가 싶지만 임금은 절대 권력자여서 권력 강화나 임기 연장에 신경 쓸 리가 없었다. 그럼 왜? 정조는 역사상 드문 반정을 일으켰을까. 정조는 흔히 학문을 좋아하는 호학군주, 개혁군주, 문화군주, 계몽군주로 불린다. 실제로 이같은 호칭이 와 닿는 군왕이었다. 세종대왕에 다음가는 군왕으로 꼽힌다. 당시 조선사회에는 '패관잡기'라 불리는 서책이 널리 나돌았다. 이른바 소설책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패관소품이 나돌아 백성들뿐만 아니라 유생들까지 파고들었다. 청국에서 건너오기도 하고 국내에서 생산된 것도 많았다. 여기에는 왜란·호란을 겪은 백성들은, 백성을 두고 도망치는 군주(선조)와 무릎 꿇은 군주(인조)를 지켜보면서 지배층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백성들의 의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이 선호하는 '패관소설'과 각종 잡기는 전통적인 성리학에 절어 있는 군주나 사대부들에게는 도도한 문화침투였을 것이다. 정조는 16년(1792) 신하들에게 소설 문체의 폐해를 언명하였다. 요즈음 선비들의 기상이 점점 나빠져서 문풍이 날로 고약해지고 있다. 과거시험에 올라오는 문장들을 보더라도 모두 폐관 소품의 문체를 모방하러 경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뜻들도 전혀 소용이 없다. 내용도 별로 없으면서 기교는 어찌나 부리는지 옛 사람의 채취도 찾아볼 수가 없고 조급 하고도 경박한 것이 평화로운 세상의 문장 같지도 않다. 이는 세상의 도와 길이 이어져 있으니 실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조선왕조실록>, 정조 16년 10월19일)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