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도 유튜브도 없던 90년대, 조용한 질풍노도시기를 보내던 나의 유일한 낙은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었다. 테이프 앞뒷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듣다 조금씩 질릴 즈음, 손에는 조용히 만화책이 들려 있곤 했다. <드래곤 볼>, <닥터 슬럼프>, <공작왕>, <북두신권>, <슬램덩크>, <시티헌터>... 몇 번만 넘겨도 빛이 바래던 종이 위 흐릿한 명암으로 인쇄된 만화책은 누가 봐도 해적판이었다. 어설프게 번역된 한국 이름은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십 대 아이들에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만화책은 금지된 일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권선징악의 틀에 갇혀있던 한국 만화와 달리 자극적인 주제와 선정적인 표현은 사춘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입시에 갇혀 아등거리던 나에게는 일탈과 웃음을 안겨주는 카타르시스 도구이기도 했고.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시절 우리는 만화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까지 일본의 것을 따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본 문화는 시기와 질투, 동경과 열등감이 뒤엉켜 있던 불편한 거울이었다. 이 시기 십대였던 나는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일본 음악과 영화에 익숙하지만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 노재팬 시절 일본 맥주 불매에 동참했지만, 슬램덩크가 개봉했을 때는 아들 손을 잡고 보러 가는 이런 이중성은 한국 문화가 일본을 넘어선 지금도 불편한 앙금으로 남아있다. 도쿄의 판타지 구현한 <시티헌터> 나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본 작품은 <시티헌터>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첫 번째 <시티헌터>는 돌려 볼 대로 돌려봐서 너덜너덜해진, 손바닥만 한 크기의 만화책이었다. 훤칠한 키에 단단한 근육, 짙은 눈썹과 멋진 눈매를 가진 주인공의 첫 한국 이름은 '방의표'. 허나 방의표가 촌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던 탓인지, 해적판 속 이름은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우수한'으로 정착했다. 여전히 이 이름은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사에바 료'다. 그는 도쿄 신주쿠를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보수를 받는 해결사다. 그런데 이 남자, 단순한 뒷골목 깡패가 아니다. 최고의 청부업자로 선수들의 세계에서는 전설로 통한다. 상대방의 총알을 피하며 357 매그넘 콜드파이선 단 한 발로 헬리콥터를 격추시키는 사에바 료의 모습은 적들에게 선망과 공포의 대상이다. 그를 부르는 방법은 오직 하나, 신주쿠역 전언판에 'XYZ' 남기는 것. 단, 남자는 제외다. 오직 예쁜 여성만 그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 모든 게 완벽한 사에바 료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심각한 호색한이라는 것. 다행히 사망한 파트너 마키무라의 여동생이자 현재 조수 카오리가 곁에 있어 료가 발작할 때마다 거대한 망치로 그의 음탕함을 부숴버린다. 사에바 료는 본래 <캣츠 아이>라는 작품에 잠시 등장한 카메오였다. 시티 헌터의 원작자 호조 츠카사는 1981년 세 자매 미녀 괴도를 다룬 <캣츠 아이>를 소년 점프에 연재했을 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에바 료를 잠시 출연시켰다. 대히트를 친 <캣츠 아이>의 후속을 고민하던 호조 츠카사는 1985년 사에바 료를 주인공으로 한 <시티헌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을 내뿜는 도쿄의 빌딩들, 신주쿠를 움직이는 유흥가와 그 속을 살고 있는 밑바닥 인생들, 그리고 법의 관할을 벗어나 도쿄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이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하는 완벽한 남자와 동료들의 활약상이 <시티헌터>의 주요 스토리다. 짙은 쌍꺼풀, 푸른 눈동자, 9등신의 몸, 시티 헌터 속 인물들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일본인과 동떨어져 있다. 이런 설정은 '탈아입구', 80년대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이 되고자 했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상 중 하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