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앞에서 카페 운영한 군인들 정체... 소름 돋는다

1989년에 조성된 노태우 정권의 공안정국이 노재봉 총리서리 임명(1990.12.27.)을 계기로 한층 강화되기 전인 1990년 10월 4일 목요일이었다. 일요일부터 시작된 닷새 간의 추석 연휴 마지막인 이날,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 7층에서 국군보안사령부 탈영병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실태를 폭로했다. 보안사 현역 장교가 서울대 부근에 '모비딕'이라는 위장 카페(술집)를 차려놓고 보안사 서빙고분실 사병이 거기서 웨이터 역할을 했을 정도로, 보안사의 민간 침투는 깊숙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일대 충격에 빠졌다. 그해 12월 5일 자 <한겨레>는 "우리 사회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탄식하면서 "그동안 정부의 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한 비밀로 소문이 무성하던 보안사의 탈법·월권적 대민 사찰의 실상이 구체적 증거자료를 통해 생생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라는 말로써 10월 4일 이후로 국민들이 받은 충격을 최대한 정제된 언어로 정리했다. 민간인 사찰 통해 간첩 조작 보안사가 이처럼 대민 사찰로 나아간 것은 사실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었다. 보안사의 최초 창설자인 이승만이 이 기구의 원형을 만들어낸 목적도 거기에 있었다. 행정안전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간한 <전국 국가폭력 고문피해 실태조사 (2차)> 보고서는 "보안사령부는 대한관찰부와 특별정보대에서 시작되어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과, 육군본부 특무부대, 방첩대를 거쳐 보안사령부가 되었다"라고 한 뒤 "1948년 설치된 대한관찰부의 목적은 이승만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통해 확인된다"라면서 이렇게 기술한다. "그는 대한관찰부를 대통령 직속으로 사행어사 격으로 발동하는 기관, 그 후속 기관인 사정국을 대통령 직속 아래 모든 정치관계 기타를 정탐하는 기관으로 각각 정의하고, 비행이 발견된 정·관계 인사들을 감봉·정직·파면 등 법의 처단을 받게 하는 곳이라 하였다." 사(私)는 '개인'이나 '불법'뿐 아니라 '비밀'도 뜻했으므로, 이승만이 말한 사행(私行)어사는 암행어사와 비슷했다. 그가 민간 정치사찰을 목적으로 만들어낸 이 같은 사행어사들을 1972년 1월 17일에 맞닥트린 인물이 포항의 노조활동가인 이인국이다. 이인국은 대한관찰부의 후신인 육군보안사령부가 그달 29일에 발표한 대형 공안사건의 피해자다. 이날 발행된 <매일경제>는 보안사가 제공한 이인국의 프로필을 이렇게 보도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