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을 따라 곧게 뻗은 도로는 늘 편리함과 접근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이동이 쉬워졌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 길이 놓인 자리에는 파도와 모래가 오가며 숨 쉬던 해안의 시간이 멈춰 서 있다. 해안도로는 단순한 기반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며 스스로 균형을 이루던 해안을 콘크리트 구조물로 고정한 선택의 결과다. 도로가 나면 파도의 흐름은 막히고, 모래는 더 이상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한 번 인위적으로 굳어진 해안은 스스로 회복할 수 없고, 침식과 붕괴는 서서히 진행된다. 결국 해안도로는 바다를 바라보기 위한 길이 아니라, 바다를 훼손의 현장으로 밀어 넣는 통로가 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선택된 곧은 길은 자연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해안은 도로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고 변화하며 살아 있는 공간이다. 이 사실을 외면할 때, 해안은 침묵으로 저항한다. 무너지는 해안선과 연안 침식이 그 신호다. 편리함을 위한 길인가, 침식의 시작인가 강원도 강릉 옥계에서 주문진 향호리까지 이어지는 총 64㎞ 해안도로 조성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강릉시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진행할 계획인 이 사업은 그동안 단절돼 있던 주문진 향호해변과 남항진~안인 구간을 연결해, 강릉 전 해안을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연속적인 해안 관광도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강릉시는 이를 동해안 대표 경관도로로 조성해 관광 활성화와 이동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2026년 1월,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 해안가에서는 해안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한때 넓게 펼쳐졌던 모래해변 위로 중장비가 들어서며, 해안선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콘크리트 기초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해안도로 조성을 위해 자갈과 골재가 해변 곳곳에 쌓여 있고, 굴착기와 덤프트럭 등 공사 장비는 파도가 밀려오는 사이에도 쉼 없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동하던 모래해변은 공사 일정에 맞춰 다져지고 형태가 바뀌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향호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국 여러 해안도로 인근에서 해변 폭 감소와 연안 침식이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음에도, 접근성과 관광 편의성을 앞세운 바다 인접 도로 건설은 계속되고 있다. 해안도로라는 파랑과 해류의 흐름을 가로막는 구조물 하나가 파도의 에너지를 인접 해변으로 전이시키고, 그 결과 침식은 연쇄적으로 확산된다. 동해안 곳곳에서 해안도로의 문제점은 이미 현실이 됐다. 2021년, 강릉 주문진과 영진 사이를 잇던 해안도로는 붕괴됐다. 바다를 따라 곧게 이어졌던 도로는 반복되는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던 경관도로는 한순간에 재난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같은 해, 강릉 사천진해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안도로가 나 있는 사천진해변에서는 산책로와 편의시설 등 각종 해안 시설물이 하나둘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모래사장은 빠르게 깎여 나갔고, 해안선은 눈에 띄게 뒤로 물러섰다. 바다는 도로와 시설물 바로 앞까지 밀려와 있었다. 사고 뒤에는 복구 작업이 계속됐다. 씻겨 나간 모래를 다시 붓고, 바다를 막기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인공 시설이 해안에 덧붙여졌다. 겉보기에는 상처가 봉합된 듯 보였다. 그러나 2026년 1월 7일, 다시 찾은 사천진해변의 해안도로는 도로 하부를 떠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파도는 구조물 아래를 파고들며 모래를 끊임없이 씻어내리고 있었고, 도로 아래 지반은 텅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