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대뜸
"서울 너무 비싸"
묻는 이 남성의 정체

"아무리 노력해도 내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사람을 체념하게 만든다. 불안감을 느끼다 체념하게 되고, 그 다음 단계는 분노다." 10년간 군인권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 온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지난달부터 유튜브 등 SNS에 <서울 너무 비싸>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고 있다. 밝은 하늘색 양복을 갖춰 입은 그는 서울 거리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난데없이 "서울 너무 비싸지 않느냐"고 묻는다. 시민들은 당황하면서도 "너무 비싸다"고, 세입자로서의 고단함과 타지역에 비해 높은 밥값을 이야기한다. 서울 성북구에서 나고 자란 김 사무국장은 '서울 토박이'이지만, 그 사실이 이 활동의 모든 걸 설명해주진 않는다. 그가 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 '서울시민 김형남(@kim.hyungnam)'에는 그래서 이런 댓글이 자주 달린다. "이거 왜 하는 거임?"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이면서 윤석열 탄핵 정국을 이끈 광장의 사회자였던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직책 하나를 더 갖고 있다. 정치싱크탱크 '밸리드(VALID)'의 공동대표가 그것이다. 밸리드는 "Victory And Love In our Democracy(우리의 민주주의에 승리와 사랑을)"의 약자이면서, 한국 정치에 유효(VALID)값을 남기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온도와 각도를 상징하는 작은 원이 로고 위에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의미 있는 각도를 찾아내기 위한 팀의 열정을 뜻한다. 김 대표를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밸리드 사무실에서 만나 <서울 너무 비싸> 캠페인에 대해 묻고 들었다. 이 활동을 시작하며 2016년부터 일했던 군인권센터를 떠나기로 한 그의 입에서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으로서 마주했을 땐 자주 듣기 어려웠던 단어가 흘러나왔다. 서울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 체념, 분노, 박탈감 등이 그것이었다. 10년 일한 군인권센터 떠나는 이유 김 대표가 2022년 쓴 책의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이랬던 그의 관심이 군인에서 서울시민으로 확장된 이유를 물었다. "지금도 수화기 너머로 들었던 후임의 말을 마음의 짐으로 이고 산다. 부당함은 맞서 싸우는 것보다 참는 것이, 힘든 일은 털어놓기 보단 앓는 것이 당장은 힘들어도 오래도록 편하고 현명한 삶이라는 말. 갓 스무 살을 넘긴 평범한 청년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군대를 바꾸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그 무렵이다." - <군, 인권열외> 서문 - 10년 간 일해온 군인권센터를 1월 말 떠나기로 결심했다. 계기가 있나. "2016년 인턴으로 군인권센터에 들어갔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자 세상이 진보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군대라는 공간을 바꾸는 일도 한국 사회에서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을 시작하며 가졌던 문제의식이 10년이 지나 우리 사회의 존폐를 가르는 화두가 됐다. 내란 국면에서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가 화두였고 앞서 고 채상병 사건도 있었다. 물론 군 지휘부는 여전히 위법한 명령에도 윤석열에게 복종했고 계엄이 이행되도록 했으나, '이게 맞는지' 의심하는 사람들 덕분에 계엄은 성공할 수 없었다. 군대라는 공간을 바꾸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허튼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내란 국면에서 군인권센터의 중요성이 더 커지지 않았나. "이번 내란 국면에서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군대에서 경험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사회에서 불의에 타협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인 것처럼 내재화된다. '군대에서 핸드폰 쓰는 것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면 30대 초반 남성의 반대 비율이 가장 높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군대에서 핸드폰 쓰고 싶었던 이들이다. 군대라는 공간은 사람의 인식을 왜곡시키는데, 그것이 울분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왜 나만 군대가? 왜 여자는 군대 안 가? 왜 나만 이런 것 겪어야 돼?'라는 식으로. <서울 너무 비싸> 영상에도 악플이 달린다. 이 분노는 캠페인 취지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가리지 않고 표출된다. 생활인들이 계속 화가 나 있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소위 극우라는 극단화된 행동을 해결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정도 (군인권을 위한) 한 가지 일을 해왔으니 새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