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구례는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왁자지껄한 관광객들의 행렬에서 살짝 비껴나면 낮은 산자락을 따라 층층이 몸을 뉘여 온 사포마을 다랭이논이 나타납니다. 초록의 생명력이 넘실대던 여름이나 벼 이삭이 서걱거리던 황금빛 가을은 이미 지나갔지만, 지난밤에 내린 눈으로 겨울이 찾았습니다. 모든 것을 비워낸 뒤에야 비로소 진짜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사람의 인기척보다 먼저 반기는 건 지리산에서 내려온 알싸한 바람입니다. 빈 논은 텅 비어 있었으나,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꽉 차 보였습니다. 흙과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굽이굽이의 곡선들이 하얀 눈이 쌓여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논둑의 경계는 정교한 등고선이 되어 산의 굴곡을 그대로 닮아 있었습니다. 척박한 땅을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놓은 그 끈질긴 마음들이 층층이 쌓여 이토록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