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진품명품>의 옛책 명품 감정가로 친숙한 김영복 선생이 직접 운영하는 인사동 '문우서림'. 지난 8일 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옛책의 향기가 물씬 밀려왔다. 십여 년 전 어느 발표장에서 멀리 뵌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마주 앉기는 처음인데도, 선생은 오랜 벗을 맞듯 반겨주셨다. 덕분에 인사도 채 마치기 전에 옛책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올해로 인사동 통문관에서 고서와 인연을 맺은 지 꼭 50년, 자신의 가게 문우서림을 연 지 35년이 되었다는 김영복 선생. '인사동 터줏대감'이자 '문화재급 인간 도서관'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이번에 펴낸 <옛것에 혹하다>(돌베개)는 <법률신문>에 7년간 연재한 '고미술 이야기' 칼럼을 바탕으로, 고서와 고서화에 얽힌 비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에 엮은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가품에 속아 전 재산을 날린 20대의 실패담부터, 폐지 수레에 실려 사라질 뻔한 다산의 <하피첩>,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남긴 비장한 유묵, 그리고 사대부의 한글 편지와 궁중 서사상궁의 봉서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현장 경험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옛것에 깃든 사람의 숨결을 전해 듣는 시간이었다. 미술품에 담긴 사람과 정신 - 책의 시작부터 '가품(짝퉁) 추사 대련'을 사서 큰돈을 날린 실패담을 솔직하게 공개하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대 초반, 패기만 믿고 3~4년 모은 돈을 털어 추사 김정희의 대련을 샀는데 가품이었습니다. 그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낙담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추사 글씨를 깊이 연구하게 되었으니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지요. 저는 고미술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사람에게 배우고, 둘째는 깊이 공부하며, 셋째는 권하는 사람보다 작품 그 자체의 가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 이 책에는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이야기가 매우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네, <하피첩>은 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부인이 보내준 헌 치마를 잘라 만든 서첩입니다. 다산은 그 치마에 두 아들과 손자에게 전하는 교훈을 적었는데, 아버지의 엄격함과 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이 첩은 한때 파지를 줍는 할머니의 수레에 실려 사라질 뻔했다가 극적으로 발견되어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런 극적인 사연들이 고미술의 매력입니다." - 선생님은 추사 김정희 전문가로도 유명하신데, 책에서 추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도 많이 소개하셨더군요. "추사의 작품 중 <소영은>, <복초재시집>, <죽재·화서 대련>이 흩어졌다가 2010년 경매를 통해 다시 한자리에 모인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추사가 스승 옹방강의 시집을 해남 대흥사에 보관하게 한 사연과 초의선사와의 깊은 우정이 담긴 유물들인데, 이 재회를 중개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예술품에는 영원한 주인이 없고, 물건은 결국 아끼는 사람에게 가게 된다는 '물각유주(物各有主)'의 이치를 다시금 깨달았죠." - 책을 보니 단순한 미술품 소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람'과 '정신'을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이야기도 그렇고요. "맞습니다. 저는 '잘 쓴 글씨'보다 '좋은 글씨'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여순 감옥에서 쓴 '세심대(洗心臺)' 같은 글씨는 기교를 넘어선 비장미와 뜨거운 기상이 서려 있어 최고의 서예가도 따를 수 없는 경지입니다. 또한, 병자호란 때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이 심양 감옥에서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 육필 시고를 보면, 옛 선비들의 진솔한 우정과 고뇌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나 잊힌 문화를 발굴하는 데도 힘쓰셨는데,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발견이 있다면요? "조선 시대 목판본 중 가장 훌륭한 책으로 꼽고 싶은 <완구유집>을 들 수 있습니다. 완구 신대우의 아들 신작이 당시에 연구하던 한나라 예서체로 직접 글씨를 써서 판각한 것인데, 그 예술성이 탁월합니다. 또, 우리 역사 최초의 연극 대본인 <동상연의>나 다석 유영모 선생이 쓴 우리말 과학책 <도량형신제 메트르요항> 같은 자료들도 그 시대의 시대정신과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들입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