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육아 고단함 날린, 며느리의 뜻밖의 선물

서울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할 때까지, 주거지로 서울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어린 날의 추억과 청춘의 발걸음이 남아 있는 도시, 삶의 많은 계절을 함께 건너온 곳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살고 있는 지금은 서울로 향하는 길이 예전처럼 가볍지 않다. 수도권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아직 철도가 연결되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적지 않은 피로를 감당할 용기가 필요하다. 서울 토박이에게도 서울 나들이는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만큼 세월이 깊어졌다는 사실이 겁나기도 한다. 서촌 한옥에서 2박 3일 그런데 지난 7일, 나는 용기를 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2박 3일의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이번 서울행은 며느리가 건넨 뜻밖의 선물이었다. 학교 교사인 며느리는 겨울방학임에도 연수와 출근 일정으로 분주했다. 그 와중에도 손주를 돌보느라 지친 내 어깨를 헤아렸는지, 서촌의 한옥에 2박 3일의 휴식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한옥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한옥집에서 지내보는 것은 작은 소망이기도 했다. 첫날은 동네 골목길을 천천히 돌아다니다 들어와 쉬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나온 것이 오랜만이라 긴장했는지, 몸이 금세 피곤해졌다. 둘째 날, 경복궁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겨울 공기가 서늘하게 뺨을 스쳤다. 계곡의 물도 꽁꽁 얼어 있었다. 천천히 길을 걸어 내려오다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터 앞에서 멈췄다. 작은 안내문과 태극기가 어느 집 담벼락에 박혀 있었다. 시인의 숨결이 아직 그곳에 머무는 듯,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시 한 줄이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중에서 청년 시인의 떨리는 고백이 겨울 공기 속에 머무는 듯했다. 계곡 쪽으로 올라가던 등산객 일행이 웃으며 나를 흘긋 쳐다본다. 내가 시를 읊고 있어서였을까. 중학교 시절, 이 시를 예쁘게 써서 학교 화장실 벽에 붙여 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뒤로 각 반마다 시 한 편씩 준비해 화장실에 붙여 놓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소녀 시절의 내가 윤동주 하숙집 터 앞에서 다시 불려 나왔다. 젊은 날의 나는 어디쯤 놓여 있을까. 부끄럼 없이 살다가 시인이 되었을까. 그렇게 서촌에서 시작된 하루는 조금씩 깊어졌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