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수양의 공간에서 힐링 명소로…근대적 등산의 역사

“살아있는 역사이니 가 보아라. 영웅심을 기르기 위하여 가거라…그리하여 조선의 산 많음이 긴절(緊切)한 의미가 있도록 할지어다.”(1917년 잡지 ‘청춘’에 실린 ‘산에 가거라’에서)일제강점기 문인이자 학자였던 최남선(1890~1957)은 등산을 통해 한민족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길 권했다. 이후 1920년대 여러 문인이 신문과 잡지에 잇달아 명산 기행문을 냈고, 이는 조선인의 등산 의욕과 자긍심을 자극했다고 한다.올해도 새해를 맞아 전국 명산에 올라 기운을 받고, 마음가짐을 다잡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선호하는 취미 상위권에 언제나 꼽히는 등산은 최근엔 한국 여행을 오는 외국인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K등산’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조선시대 선비들은 등산이 아니라 ‘유산(遊山·산으로 놀러 다님)’을 했다.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사학)는 유산을 “명산 속 사찰을 찾아 보고, 골짜기에서 물놀이하고, 시문도 짓는 선비들의 유람 여행”(산악연구 2호,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