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셸'은 자동차를 훔쳐 도로를 달리던 중 사고로 그를 쫓던 경찰을 살해한다. 쫓기게 된 그는 파리에서 도피 자금을 마련하려 한다. 길에서 몇 주 전 남쪽 휴양지 니스에서 몇 번 만났던 미국 유학생 '파트리시아'와 우연히 재회해 며칠간 그녀의 아파트에서 함께 머문다. 미셸은 파트리시아에게 함께 로마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파트리시아는 그가 싫지 않으면서도 망설인다.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며 빠져드는 두 사람이지만, 경찰의 수사는 점점 그들을 죄어온다. 새로운 물결의 탄생 위의 내용은 놀랍게도 세계 영화 역사를 뒤흔들었던 '누벨바그 La Nouvelle Vague'의 상징이자, 현대 영화의 출발점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줄거리 거의 전부다. 전혀 교훈적이지도, 딱히 놀라울 것도 없어 보인다.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기도 곤란하다. 소규모로 제작된 영화는 자주 장면을 휙휙 건너뛰고 점프하는 데다, 이야기의 맥락이나 개연성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결점과 단점투성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기묘한 요소가 조합된 영화를 총체적으로 경험하면, 기이한 감각에 휩싸인다. 자신이 본 걸 설명하긴 곤란한데, 딱히 뭐가 좋다고 예찬하기도 힘들지만, 묘하게 계속 기억에 남고 끌린다. 이 영화가 대표하는 '누벨바그'란 한 시대를 풍미한 경향 자체가 직역하면 '새로운 물결'이란 뜻이란 데 이유가 숨어 있다. <네 멋대로 해라>의 감독 고다르는 당시 신인이었지만 무명은 아니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나름대로 프랑스 영화계 유명 인사였다. 당대 프랑스 영화계를 격심하게 비판하던 신진 평론가로 유명세를 날렸는데, 기성 영화판에서 '잘난 척하지 말고 한 번 만들어 보던가'라며 비난하자 이에 답하려 했다. '내가 만들어도 댁들보단 잘할 수 있다'를 실천하려 한 셈이다. 세계 영화계를 뒤흔든 문제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고다르는 동시기 프랑스 영화의 어떤 부분을 비판한 걸까? 답을 알려면, 시대 맥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촬영된 1959년은 2차 세계대전의 전화에서 유럽이 전후 급속한 부흥과 함께 영화산업도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고다르와 동료 신진 평론가들은 극장에 관객이 가득하고 영화 제작은 활발했지만, 판에 박힌 상업적 성공이 보장된 작업 위주로만 이뤄졌다는 데 주목했다. 풍요 속의 빈곤, 겉으론 만사형통이라도 속으론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 때라 본 것이다. 전쟁의 상흔 속에서 진지한 성찰과 함께 사회의 소외된 현실을 조명하던 '네오리얼리즘' 사조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프랑스 영화계는 대중문학 인기 소설의 각색 위주로 흘러갔다. 당장 흥행과 인기는 보장되지만, 영화만이 가능한 표현과 실험보다는 관성화된 작품이 양산됐다. 그렇게 프랑스 영화는 '고인 물'이 되어갔다. 고다르와 그의 친구들은 대서양 건너 미국 동시대 영화에 주목했다. 할리우드 대표주자가 아닌, 'B급' 장르 영화를 통해 상업영화로만 해당 작품을 이해하던 관객에게 그 영화들이 숨기고 있던 함의를 포착하고 추출하는 데 집중했다. 고루해진 자국(프랑스) 영화를 자극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들은 동시대 대중과 호흡하며 새로운 시대의 기운을 듬뿍 녹여낸 통속 소재, 즉 범죄 장르를 재조명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