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청문회에서 봐야 할 단 한 가지

이혜훈의 갑질이나 축재 논란은 사실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인사 검증을 했던 청와대도 이혜훈의 도덕성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지명했습니다. 왜 했을까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민주 정부가 보수 정부와 가장 다른 점은 두 가지로 집약됩니다. 하나는 통일정책, 다른 하나는 재정정책입니다. 민주 정부는 남북 관계를 어떡하든 평화 공존 체제로 가져가고 싶어 합니다. 보수 정부는 대결적입니다. 민주 정부는 복지를 강화하려 합니다. 문재인 정부 때가 대표적인데, 재정도 확장 기조를 견지합니다. 반면 보수 정부는 복지보다 부자 감세와 긴축 재정에만 진심입니다. 그런데 민주 정부는 대북 유화 노선을 취하되, 그 일을 보수진영 인사에게 맡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국민 눈에 균형 잡힌 정책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임동원이 대표적 예입니다. 임동원은 원래 군 출신입니다. 그런 그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앞장섰습니다. 문제는 재정정책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투자해, 벌어서 갚으면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걸 '따갚되'라고 한답니다. '따서 갚으면 되잖아'의 줄임말입니다. 전형적인 '케인스주의'적 접근입니다. 역대 민주당 정부가 대개 그런 정책 기조를 택했습니다. 펌프에 마중물을 부어 저 아래 내려가 있는 지하수를 끌어 올리듯, 유효수요를 자극해 민생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책입니다. 문제는 이런 확장적 재정 정책에 선뜻 앞장서는 보수 인사가 잘 없다는 점입니다. 앞장은커녕 지금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재정경제부 관료들은 코웃음을 치고 있을 겁니다. 무슨 한물가도 한참 간 케인스냐며 나라 걱정을 늘어지게 하고 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창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주류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이에크와 통화주의가 그들의 이론적 시조고, 기본 축입니다. 대한민국 재정정책을 수립하는 관료들에게 그 외의 이론은 전부 이단입니다. 청와대는 보수 정당 출신 경제 전문가를 쓰겠다는 방침을 먼저 정했을 겁니다. 그다음 명단을 죽 뽑아놓고 고심을 거듭했을 듯합니다. 몇 명의 후보가 압축됐고, 그들을 순차적으로 면담했을 테지요. 대통령의 재정정책 기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떤 구체적 정책 수단이 있을지 물었겠지요. 이혜훈과 김성식은 그들 중 가장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응답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경제 상황에서는 성장과 수요 진작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정책이 맞습니다'라고.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기용된 김성식은 원래 유명한(?) 운동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혜훈은 한국 주류 가문 출신입니다. 그러니 상품성에서 이혜훈이 한 수 위입니다. 동시에 약식 검증도 했을 테지요. 그런데 결과를 보니, 도덕적 문제가 없는 후보가 없습니다. 이 후보자가 아마 평균 정도였을 공산이 큽니다. 청문회에서 볼 단 한 가지 따라서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우리가 볼 건, 딱 한 가지뿐입니다. 아마 야당 의원들이 벌떼같이 덤벼들어서 이렇게 묻겠지요. '대통령의 기본소득론을 지지하냐? 국가채무를 늘리려 할 텐데 동의하냐? 툭 하면 현금 지원을 하려 들 텐데 그게 진짜 민생을 살리는 방법이 된다고 보냐?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확장 기조로 가는 게 옳으냐?'와 같은 질문입니다. 거기에 이혜훈이 뭐라고 답하는지만 보면 됩니다. 거기서 예스라는 답변이 연속 나오면, 대통령의 첫 기획예산처 장관 임명에 담긴 포석을 우리는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이 물고 늘어지는 건 이혜훈의 배신이 괘씸해서가 아닙니다. 이재명 정부의 재정정책 방어 논리를 국회에 출석한 자당 출신 장관에게 들으며, 매일 부들부들 떨 자신들 모습이 얼마나 한심할지 눈에 선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인사 목적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혜훈의 도덕성은 어떡할 거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글은 그 문제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도덕성은 어차피 이혜훈에게 기대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원래 보수가 그런 걸 뭐 어떡하겠습니까? 우리 정치권에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보수는 능력, 진보는 도덕성'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또 이어집니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격언입니다. 둘을 합치면 대충 이럴 것 같습니다. 보수는 능력을 발휘해 높은 자리에 오른 다음 그 권력으로 해 먹다 망하고, 진보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나머지 다른 이들과 잘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은 왜 나왔을까요? 이승만 정권은 물론 군사독재 시절에도 권력은 당연히 보수의 것입니다. 진보는 감옥에 가거나, 재야에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권력이란 걸 가져본 최초의 진보 인사가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그전에는 국회의원 외에는 어떤 공직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니, 김대중 정부가 되고도 재야인사의 등용은 극히 예외적이었습니다. 무슨 자리를 맡기고 싶어도, 하나같이 이력서에 쓸 만한 그럴듯한 경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보수 인사치고 부패 의혹 없는 사람 없다는 게 국민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보수 언론은 대놓고, 그래도 능력만 출중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옹호합니다. 하지만 진보 쪽에 대해선 완전히 다릅니다. 조그만 티끌만 묻었어도 위선적이라고 온갖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수천만 원이나, 국정원이 흘린 노무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가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