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세사 연구에 크게 소홀한 부문이 있다면 활빈당(活貧黨)연구가 아닐까 싶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던 동학도와 농민군 중에는 의병으로 활동하거나 삼남지역을 무대로 관변의 기록 즉 화적·동비·영학당·서학·남학·활빈당이 되었다. 이들은 동학혁명이 이루지 못한 민족적·계급적 요구의 실현을 위해 조직하였다. 활빈당이 대표적이다. 활빈 즉 "빈민에게 활력을 준다"는 명칭 아래 1899년부터 시작되었다. 1900년 2월 충남 외포지역에서 시작하여 1904년까지 이어진 활빈당은 곧 충북·호남·경기·강원도까지 확대되었다. 활빈당이란 당호는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취한 듯 하며, 부자와 관청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지배층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나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중앙조직보다 지역단위로 활동했는데, 수십 명에서 큰 조직은 500~800명이 된 조직도 있겠다. 화승총이나 죽창으로 무장하고 일본군과 싸웠다. 활빈당은 농민이나 행상인의 금품을 빼앗지 않고 악질부호나 탐관오리를 대상으로 삼아 백성들이 의군(義軍)이라 인식하였다. 5년 여 활동하다가 1904년경 진압되거나 의병에 참여, 해체되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