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과 링거액을 이어준 건 배꼽! 배꼽만 배꼽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선처럼 아픈 내 몸의 링거도 배꼽 배꼽만 배꼽이 아니라 넘어져 퉁퉁 부어오른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기브스도 굽힐 수 없는 무릎을 어루만진다 사알살 배꼽! 내 배꼽, 목숨 하나 창조하면서 떼어냈을 엄마 배꼽! -<줄> 전문 이민숙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첫눈이야>(문학과 행동) 첫 자리에 실린 시다. 제목은 '줄'인데, 7행의 길지 않은 시에 배꼽이란 단어가 아홉 번이나 나온다. 배꼽은 엄마의 자궁에서 엄마와 하나로 이어지는 탯줄을 끊어낸 흔적이다. 시의 화자는 혈관과 링거액을 이어주는 이음매 자리를 매만지다가 배꼽을 떠올린 듯하다. 링거줄과 탯줄부터 모양이 닮았다. 그래도 그렇지. 인공물과 자연물을 하나의 동류항으로 묶은 관찰력이 놀랍다. 화자의 관찰력은 상상력으로 이어져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기브스"로까지 눈길이 간다. 그때 병상에서도 시인의 눈빛은 얼마나 빛났을까? 이민숙 시인은 죽음의 문턱을 건너온 경험이 있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지만 그녀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자궁이다. 나야 남자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시의 확장은 늘 나에게 숙제 같은 것이었는데 다음 시를 읽어보자. 여인들은 여자를 벗으며/밤새 식은땀을 흘린다 어느 날부터/더 이상 간직할 자궁이 없어 흘러내리는 액체/버릴 수도 껴안을 수도 없다 붉디붉은 꽃잎/후두둑! 쏟아지는 벼랑 끝에서/날개마저 젖어 날 수도 없는 노을에 터벅터벅 닿는다/시도 때도 없이 휘몰아쳤던 열애의 봄비/찬 샘물 뜨거운 비등점으로 솟구쳤던 첫사랑 뒤로 하고 -<마지막 동백-전옥주> 부분 여인들이 여자를 벗고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은 갱년기의 한 증상이다. 어느덧 나이 칠십 줄에 든 시인은 어느 날 동백으로 유명한 여수 오동도에 갔다가 땅에 떨어진 붉디붉은 꽃잎을 본 듯하다. "더 이상 간직할 자궁이 없어서 흘러내리는 액체"로 표현된 처연하면서도 도저한 자궁의 상상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수에서 광주로 확장된다. '전옥주'라는 부제가 붙은 <마지막 동백>은 "어둠의 빛 별리의 사랑 마지막이라는 우주가 꼬리를 물고 오리니/전옥주 그녀, 세상의 처절한 소리로 우주를 흐르게 하였으니"라고 우리의 아픈 현대사의 전승된 기억을 노래한다. 전옥주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가두방송으로 시민들에게 광주시민 학살의 참상을 알린 바 있다. 그 일로 계엄군에 끌려가 모진 고문과 여성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수모를 겪는다. 옥고를 치르고 사면이 되어 석방된 뒤에도 평생 심한 고문 후유증을 겪어 밤낮없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 야만의 시대에 그녀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을까? 이민숙 시인은 순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여수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순천과 여수는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이 난무했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한때는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던 <여순 10.19>의 뿌리에 <제주 4.3>이 있다. 이번 시집에는 순천과 여수, 제주, 그리고 광주에서 "기쁨보다는 상흔을 먼저 익힌 감성"으로 쓴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여수 앞바다 푸른 눈동자!/그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서 어떤 청춘의 창작실을 꿈꿀 수 있으랴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