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아래 빨간 글씨로 촘촘히 적힌 숫자들. '주(주간 근무)'와 '야(야간 근무)'를 구분한 출퇴근 시각이 빼곡히 적혀 있다. 휴가를 '후가'로 적을 만큼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이 달력의 주인인 이주 노동자는 회사가 지급한 엉터리 월급의 실체를 발견해 약 2년간의 체불액 1729만 원을 직접 받아냈다. '이주 노동자 체불 임금 연 1100억 원'의 나라에서 달력은 이들을 지키는 유일한 무기였다.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는 매년 연말연초마다 탁상 달력 기부를 받고 있다. 어느덧 10년째 진행 중인 이 활동은 이주 노동자의 출퇴근 기록용 달력을 모으기 위함이다. 김희정 지회장은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주 노동자 대부분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임금명세서를 전달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며 "이들의 실제 근로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매년 달력 기부를 받고 있다. 한 해 300~400개 정도 모인다"고 전했다. 현행 노동법상 이주 노동자는 한국인 노동자와 차별 없이 근로기준법 등의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사업주가 의도적으로 이들의 근무 시간을 기록에 남기지 않아 임금·퇴직금 체불 발생 시 이를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따라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의 근무시간을 달력이나 노트, 휴대폰 앱 등에 기록해 스스로 권리 보호에 나서고 있다. 김용주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오마이뉴스>에 "이주 노동자 임금 체불 사건이 발생해 노동청 조사가 진행돼도 사측에서 '근무 관련 자료가 없다', '이미 파기했다'는 식으로 대응해 문제 해결에 애로 사항이 많다"고 "이 같은 상황에서 노동자가 달력, 메모지 등에 매일 근무시간을 기록한 내용이 매우 유력한 정황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