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인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은 미국 곳곳, 겉보기에는 무작위로 외진 곳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작은 마을 식당에서 와플과 비빔밥을 함께 파는 가게를 운영할 수도 있고, 뉴저지에서 자택 미용실을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켄터키의 군사 기지 외곽에서 현지 군인들이 즐겨 찾는 한/미 퓨전 식당을 운영할 수도 있고, 기지 내 PX에서 일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한인 사회 변두리를 맴돌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에 다니거나 한국 식품점에서 장을 보거나 한국 식당에서 일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국인들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한국인들은 이 여성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뒤에서 "저 여자 군인이랑 결혼했잖아"라고 수군거릴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남편은 성공했지만 교회 같이 안 다니지"라거나 "자식은 잘 키웠네. 좋은 대학에 보냈잖아"라고 덧붙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 여성들이 한때 한국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다가 운 좋게 "고객"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와 똑똑한 아이들을 키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타락한 여성"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로 변모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평범한 한국인과 달리 "국제결혼 여성"이며 그들의 자녀들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혼혈이므로 '다르다'고 비난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미군 기지촌의 어둡고 지독한 '그림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을 매춘부나 돈을 노리는 여자로 낙인 찍는 그림자입니다. 이 낙인은 너무나 강렬해서, 기지촌 출신 아닌 여성들은 기지촌과 거리를 두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예를 들어,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모범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자고 주의를 주듯 서로 격려하며, 기지촌 여성들과 혼동되지 않도록 애씁니다. 이러한 낙인은 여러 세대에 걸쳐 한국 여성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양국의 지배층, 특히 군부가 묵인하고 정당화해 온 잔혹한 성적 노예 제도의 실체를 은폐해 왔습니다. 국가 안보와 동맹이라는 명목으로 인권 유린과 비인도적인 정책을 조장한 바로 그 사람들과 정부들이 부끄러워해야 마땅합니다. 그 시스템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오키나와, 필리핀, 태국까지 포괄했습니다. 제가 2002년 출간한 책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Beyond the Shadow of Camptown: Korean Military Brides in America)>의 첫 장에서는 미국이 어떻게 자기 군인들을 위한 성매매를 관리했는지, 즉 현지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사실상 자체적인 "위안부" 시스템을 운영했는지에 대한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나라 정부가 여성들을 외국 군대에 팔아넘기는 데 협력했다는 점입니다. 신식민주의적 압력으로 한국과 같은 나라들은 이에 굴복했습니다. 여성들을 단순히 권력을 가진 남성의 욕구를 위해 희생시키는 것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가부장적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용인되어 온 너무나 익숙한 관습이었습니다. 미군 병사의 아내로 미국에 이주한 한국 여성들, 그중 소수가 기지촌 출신입니다. 그 여성들에게는 기지촌 경험이 잊히지 않습니다. 저는 군인 신부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그러한 여성들을 여러 명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인권을 침해 당한 경험이 산더미였습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기지촌에서 일하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구타당하고, 폭행당하고, 미군 성매매 시스템에 팔려 갔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리겠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