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석판 위에 어린 양이 제물로 놓여 있다. 네 다리가 묶인 채 죽음을 기다리는 듯하지만, 표정은 체념보다 수긍에 가까워 보인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사용해 ‘스페인의 카라바조’라고도 불리는 17세기 바로크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의 그림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 출품된 이 그림은 단순한 구성에 크기(가로세로 52.1X35.6cm)도 자그마하지만 관람객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끄는 힘을 지녔다. 어두운 배경 속 밝은 양의 모습이 마치 연극 무대처럼 강렬한 대비를 이뤘고, 양털은 손을 가져다 대면 부들거리는 촉감이 느껴질 듯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수르바란은 이처럼 경건한 아름다움을 담아낸 종교화와 정물화로 널리 이름을 알렸던 화가다. 종교 지도자들과 지역 귀족들이 그를 적극 후원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수르바란의 초상화와 정물화에 대한 수요가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