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은 기원전 2세기 이전에 성립되어 기원후 3세기 무렵까지 한반도 서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존속한 정치체로, 일반적으로는 삼한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축적된 고고학적 발굴 성과는 마한의 역사적 실체가 기존 통설보다 훨씬 길고, 공간적으로도 더 넓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특히 전북 익산과 전남 일대의 유적은 마한의 시작은 어디였으며, 마한의 마지막 세력은 어디에 존재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마한은 삼한의 하나로서 백제로 흡수되어 소멸된 정치체가 아니라, 고조선 멸망 이후 남하한 북방계 집단과 남부 토착세력이 결합해 형성된 복합 정치체였으며, 이후에도 해상 교통망과 지역 세력을 기반으로 장기간 존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완도신문>에서는 마한의 시작을 익산에서, 그리고 마한의 마지막 세력을 완도 해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를 종합해 마한의 장구한 시간과 공간을 추적해 보기로 한다. 마한의 시작, 익산이라는 역사 무대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은 고조선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남쪽으로 내려와 한(韓)의 땅에 들어와 스스로 한왕을 칭했다고 전한다. 준왕이 남하한 이후의 정착지에 대해 <제왕운기>,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는 공통적으로 '금마(金馬)'라는 지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전북 익산시 금마면 일대로 비정된다. 익산은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고조선과 삼한, 백제, 후삼국,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와 중세사를 모두 품고 있는 공간이다. 경주·부여·공주와 함께 4대 고도(古都)로 불리면서도, 각 시대의 층위가 한 도시 안에 중첩되어 있는 유일한 지역이 바로 익산이다. 특히 청동기 문화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였던 익산은, 마한 성립 이전부터 이미 정치·문화적 기반을 갖춘 공간이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