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꽃인 줄 모를 때 투쟁이 그저 싸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겨울 숲 지나 봄 숲에 이르는 동안 저 실낱같은 가지 어느 것 하나 단단하지 않은 가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저 잔가지의 결기가 허공을 물었다 놓으면 꽃이 되었던 것 저 나무 마음에 양지가 있어 저리 단단하고 뜨거웠던 것 - <마음의 양지> 전문 김종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아무래도 바다가 책이다>(문학과 행동)를 두 번 연거푸 읽었다. 시인에게 삶의 곤경이 없었다면, 이런 울림이 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앞에 실린 시 제목이 '마음의 양지'인데 이 시는 '상처'로 시작한다. 그래서였을까. 이 시를 양지가 아닌 음지의 마음으로 읽었다. 음지에만 머물지 않는 역동성을 발휘하는 음지다. "상처가 꽃인 줄 모를 때 투쟁이 그저 싸움인 줄 알았다"는 구절은 상처가 꽃인 줄 알았기에 투쟁이 그저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 역동성이 발휘되는 지점인데, 이 시에서는 "겨울 숲 지나 봄 숲에 이르는 동안"이 그 변화의 지점이겠다. 화자는 이 과정을 통해 "저 실낱같은 가지 어느 것 하나/단단하지 않은 가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저 잔가지의 결기가 허공을 물었다 놓으면 꽃이 되었던 것"이라는 표현도 참 좋다. 추운 겨울철이라 가지는 허공을 물었다 놓을 힘이 없지만 "저 나무 마음에 양지가 있어" 약한 나뭇가지가 결기를 보일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화자의 마음이 음지에서 양지로 화학적 변화를 했다고 풀이했다. 오독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1부 두 번째 시에서 화자는 "깊은 침전에서 일어나 소나무 숲에 닿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긴 울음에서 걸어 나와 한 걸음 내디디니 한 걸음이 떼집니다"라는 구절이 중요했다. 울음이 울음에서 그치지 않고 "또 한 걸음 내디디고 다시 또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떼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어둠의 여정 시 <어둠을 읽는 방법>에서는 화자가 '유성우'를 만나기 위해 "먹빛 어둠을 찾아" 나선다. "지독한 어둠을 만나 캄캄하게 울던" 화자는 "이윽고 찾아든 별의 순간"을 만나고 "어둠에 들지 않고는 어둠을 관통하는 일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종숙의 시는 나무에서 어둠으로 그 역동성의 영역을 넓혀간다. 그러다가 "세상의 색이란 색 다 품은 저녁과 바다와 한라산이 두텁게 껴안고 색을 낳는" 포구의 밤의 미학과 만나는 어둠의 여정을 보여준다. 포구의 밤 어둠이 이리 많은 색을 가진 줄 몰랐습니다 하루가 다 저 버렸다고 세상의 색이란 색 다 데려가 버렸다고 이제 포구도 기다릴 곳이 못 된다 돌아설 그즈음 어둠이 색을 물고 찾아들었습니다 물결이 상처를 꼬옥 물고 흔들리던 밤 어둠이 빛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 절대 비밀의 문을 여는 순간이 왔습니다 - <물결이 상처를 물고> 부분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