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제공감프로젝트에서 '고령화'라는 같은 키워드를 바탕으로 모였지만, 각자의 생각 차이와 넓은 키워드로 인해서 쉽게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논의를 거듭하던 중 당장은 주제를 정하기보다 일단 다양한 어르신 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의견을 바탕으로 활동을 계획했다. 그러던 중 수린이의 할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자 국가 유공자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울 국가 유공자와의 만남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 본격적인 만남에 앞서 우리는 이 자리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어떤 질문을 해야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미리 조사하고 고민하며 준비했다. 지난해 9월 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이우학교 근처 카페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서울에 살고 계신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곳까지 와주셨다.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음료를 마시며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할아버지의 소개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성함은 이오현, 1941년생으로 86세이시다. "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해" - 어떻게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되셨나요? "육군본부에서 명령이 바로 내려와. 월남에 가기 위한 4주 교육을 받았어. 명령 받아 교육받고 기차와 배를 타고 월남으로 향했어. 배를 타고 일주일간 갔어. 산도 안 보이고 하늘과 바다만 보였어. 베트남 냐짱(Nha Trang)에 내렸어. 상당히 많은 병력이 갔지. 도착해서 며칠 뒤에 수색중대로 갔어. 수색중대는 수색소대가 있고 정찰중대가 있어. 정찰중대를 희망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문이 나왔어. 근데 나만 지원했어. 나만 지원했으니 남은 인원은 내가 뽑게 했지. 우락부락하고 용감해 보이는 사람을 18명을 뽑았어. 4주 간 교육 시킬 것들을 계획하고 훈련을 했어." 할아버지는 군인으로 생활하던 중 본부의 명령을 받아 베트남으로 향하셨다. 그 속에서 정찰 대장을 지원하셨다. - 왜 정찰 중대에 지원하셨나요? "우리 집이 가난해서 돈이 필요했어. 그래서 죽을 것을 생각하고 갔어. 죽을 바엔 명예롭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찰 중대에 지원했어. 죽은 사람의 부모에게 48개월 월급을 보내줘. 용감한 마음으로, 기왕이면 장교 생활을 멋있게 지내보자는 마음이었어." 가난했던 집에 보탬이 되고자 정찰 대장이라는 역할을 맡으셨다. 돈과 명예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지만, 할아버지는 그 둘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셨다. 죽음 앞에서 그런 용기는 어떻게 나오는 걸까. - 다른 베트남전 참전 용사분들을 보면 트라우마나 후유증으로 힘들게 사시는 분도 있는데 할아버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 이유나 계기가 무엇인가요? "나는 어릴 때부터 천주교인이어서 작전 나가기 전에 기도를 했어. 전날에 내가 명령을 내리면 다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누워있어. 난 그러면 기도하고 복장 검사를 하고 출동하지. 내가 훈련 도중에 두 명의 베트남군을 만났어. 그래서 총격을 지시했지. 근데 도망을 갔어. 하지만 쫓아갔어. 조금 내려가다가 두 명 중 한 명이 뒤통수를 맞았어. 그 사람이 앉아서 자기 머리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어. 여기 총알이 있다고. 죽어가고 있었어. 눕혀 놓고 간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나. 그래서 요즘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 가끔 이런 후유증이 생각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기도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후유증이 없어."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