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재판 리포트] 눈 뜨고 볼 수 없는, '최후의 거짓말'

기자 말 시민들의 노력 끝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만장일치로 파면했고, 새 정부도 들어섰습니다. 한번 풀려났던 윤석열도 재구속됐습니다. 하지만 내란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판은 2026년에 들어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참여연대는 시민들이 내란 재판의 근황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한 주간 재판 흐름의 핵심만 요약해 짚어주는 ' 주간 내란재판 리포트 '를 연재합니다. 2025년 마지막주에는 윤석열 공판이 두 번 열렸고, 조지호와 김용현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조지호는 변호인단의 집요한 반대신문에도 윤석열이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했다고 들었다는 증언을 유지했습니다. 김용현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형사책임까지 대신 떠맡으려는 듯, 지금까지 드러난 객관적 사실관계와 완전히 배치되는 증언을 했습니다. 지귀연 재판부는 당초 2026년 1월 9일 변론 종결을 예고했지만, 김용현 변호인 측의 '법정 필리버스터' 전략이 먹혀들면서 결국 결심공판은 1월 13일에야 열렸습니다. 마지막 증인신문과 서증조사, 특검의 구형과 윤석열의 최후변론까지, 내란재판 1심의 마지막 풍경과 최종 쟁점 정리를 주간내란재판 완결편 으로 돌아봅니다. 1. 홀로 다른 세상 이야기하는 김용현의 마지막 발악 지난 1월 5일(월), 윤석열의 공판 기일에서는 김용현이 다시 나와 변호인 측의 반대신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반대신문이라기보단 흡사 각본을 써놓고 서로 맞장구치는 라디오 출연진들 같았습니다. 둘만의 세계관에서만 합의된 소설을 진실인양 펼쳐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김용현은 자신의 혐의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윤석열 책임까지 대신 떠안으려 했습니다. 김용현은 윤석열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면서 윤석열이 계엄 선포 의사를 처음 보인 건 2024년 11월 24일이고, 계엄 이틀전인 12월 1일에서야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윤석열이 "어떤 사심도 없이 오직 국가와 국민의 안전, 민생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계엄을 반대할 생각조차 못했다고도 했습니다. 자신이 군 병력을 2~3만명 필요하다고 제안했는데 오히려 윤석열이 너무 많다며 '수백명' 규모로 하라고 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물론 모두 거짓말입니다. 계엄에 참여한 내란 사령관들조차 계엄 언급이 2024년 6월경부터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한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 직후 대책회의에서 윤석열은 계엄군 투입 규모에 대해 "거봐, 부족하다니까. 1000명을 보냈어야지"라고 말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윤석열이 오히려 실제 투입된 것보다 더 많은 군을 투입하라고 지시했었음을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윤석열도 직접 마이크를 잡으며, 한덕수와 곽종근 등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다른 증인들을 공격했습니다. 윤석열은 한덕수가 계엄선포를 막기 위해 자신에게 국무회의를 건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했고, 곽종근이 계엄에 반대하자 김용현이 특전사 수당 인상으로 회유했다는 증언에 대해서는 오히려 곽종근이 먼저 자신에게 수당 이야기를 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용현도 이에 맞장구 치면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몰았습니다.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넘어, 부하들의 명예까지 공격하는 것입니다. 2. '법정 필리버스터'와 남탓 · 궤변으로 장식한 피날레, 특검은 '사형' 구형 1월 9일(금)은 지귀연 부장판사가 예고했던 결심공판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변호인단은 노골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려 발악했습니다. 구형과 최후변론에 앞서 마지막 증거조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김용현 변호인단이 이 절차에서만 13시간 이상 발언하며 사실상 '필리버스터'에 나선 것입니다. 주장하는 내용 또한 새롭거나 유의미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윤석열을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호칭문제만으로 수시간을 허비했고, 계엄의 정당성을 반복해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국회를 지키러 나간 시민들이 폭도들이라며 적반하장식 주장도 반복했습니다. 결국 윤석열 차례가 돌아오기도 전에 지귀연 부장판사는 1월 13일을 추가기일로 잡으며 이날 공판을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 김용현 변호인단은 유튜브 등에서 윤석열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거나, 자신들 덕분에 윤석열 측이 시간을 더 길게 보장받았다는 등 의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13일(화) 공판이 열리자, 윤석열 변호인단 역시 김용현처럼 마라톤 서증조사를 이어갔습니다. 변호인단은 특검의 공소사실이 모두라며 계엄이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등, 기존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특검의 공소장 변경 요청을 받아준 재판부의 결정도 비판하면서, '노상원 수첩'의 증거능력도 문제삼았습니다. 재판 지연 논란에 대해서는 오히려 특검이 절차를 지연했다며 적반하장식 주장을 했습니다. 아침 9시 30분에 시작된 서증조사는 저녁 8시 40분이 되어서야 종료되었습니다. 마침내 1심 변론의 최종절차가 시작되고, 특검보가 피고인 구형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특검이 재판부에게 요청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형량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 이었습니다. 특검측은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윤석열이 대통령의 헌정질서 수호 의무를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를 파괴했다며,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등 양형에 유리하게 참작할 사정이 없다 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은 변호인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특검은 김용현에게는 무기징역을, 노상원에게는 30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는 20년을 선고해달라고 구형했습니다. 그 외 전현직 군과 경찰 간부들에게도 징역 10~15년의 선고를 요청했습니다. 뒤이어 피고인들이 최후진술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윤석열은 마지막까지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거짓말과 궤변을 쏟아냈습니다. 한시간 반가까이 진행된 내용의 거의 절반은 더불어민주당 탓으로 채워졌고, '경고성 계엄'이었으며 자신이 '내란몰이 피해자'라는 등 그간 해왔던 궤변을 반복했습니다. 심지어 과반 이상 국민들이 계엄 선포를 이해하고 탄핵에 반대했다거나, 청년과 학생들이 계엄의 이유를 인식하고 있다는 등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망상에 빠진 모습도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은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수 없다는, 해묵은 거짓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결심공판의 모든 절차는 자정을 넘어선 14일 새벽 2시반경에야 종료됐습니다. 3. 기타 : 윤석열 체포방해 선고, 형량보다 중요한 법리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