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다년생 쌍떡잎식물인 커피나무의 열매로 만든다. 보통 붉은 색이나 노란 색인 커피나무 열매는 체리를 닮았기에 커피체리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과일인 커피체리 자체가 커피의 재료는 아니다. 앵두만 한 크기의 체리의 껍질과 과육을 벗기고 나면 나타나는 작은 씨앗이 커피의 재료다. 생두의 색깔은 연녹색 내지는 청록색이다. 이 씨앗을 뽑아 깨끗하게 정제한 후 건조시켜 수분 함량을 10~12퍼센트 정도로 낮춘다. 이것을 생두(green bean)라고 부른다. 콩은 아니지만 콩을 닮았다고 해서 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생두를 볶으면(로스팅) 커피의 재료인 원두(roasted bean)가 된다. 원두의 수분 함량은 1.5~3%다. 볶는 과정에서 원래의 색은 변해 연한 갈색 내지는 흑갈색으로 변하지만, 모양은 유지되기 때문에 여전히 콩(bean)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커피나무의 원산지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도 커피 생두나 원두를 콩이라고 부를까? 아니다. 커피 생두, 원두, 커피 음료 모두는 콩이나 곡물이 아닌 독립된 실체이기에 독립된 이름 '부나'(Buna, 현지어 ቡና)를 갖고 있다. 커피 씨앗을 볶아서 커피라는 음료를 만들고 유행시킨 아랍 지역에서도 커피 재료와 음료를 콩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고유의 이름 카흐와(Qahwa)가 있다. 커피 씨앗에 콩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은 언제부터, 어떤 연유에서 생긴 것일까? 17세기 중반 예멘 주변에서 생산되고 가공된 커피가 오스만 튀르키예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유럽에 커피가 전해진 17세기에는 아직 커피 무역이 크게 성장하기 이전이었다. 향신료 무역이 각광 받던 시절이다. 커피 생두나 원두는 '커피'(coffee), '커피 베리'(coffee berries), '커피 시드'(coffee seeds)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커피가 국제적인 무역 상품으로 성장하였고, 이를 주도한 것이 네덜란드와 영국이었다. 18세기 후반 두 나라 사이의 전쟁, 이른바 '영란전쟁' 이후 국제 무역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무역 물품의 이름이나 단위에 영어식 표현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전성기였다. 커피 무역을 주도하던 영국 무역업자들이 본 커피 재료는 곡식을 넣는 자루에 담긴 녹색 혹은 갈색의 알갱이였다. 영국인들의 눈에는 곡식이었고, 모양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콩이었다. 결국 '빈(bean)'이라는 영어 이름이 붙여졌다. 식물학적,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 무역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은유적 표현이 점차 공식 명칭으로 고착되었다. 1700년에서 1720년대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나라 첫 커피 기록에서도 생두를 콩에 비유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커피라는 낯선 음료를 기록할 때 그 재료인 커피 씨앗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신기하게도 '콩'(豆)으로 표현하였다. 1852년, 철종 3년 경이다. 영어를 전혀 모르던 시절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