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오류를 범한 사법기관의 일원으로서 유족들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죄와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19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 501호 법정. 강민호 재판장(형사11부)이 재심 무죄 판결을 선고한 뒤 소회를 밝혔다. 50년 전 억울한 사형집행으로 아버지를 잃은 맏딸 강진옥(65)씨가 일어서서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를 연신 말했다. 일본거점 국내침투 간첩단(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 강을성씨 재심 무죄 판결은 예상된 일이었다. 1974년 11월 국군방첩사령부 전신인 보안사령부가 이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강을성·김태열씨 사형 집행이 이뤄지는 등 모두 17명의 처벌로 이어졌는데, 불법 구금과 위법 수사로 이뤄진 조작 사건이었다. 검찰조차 지난해 10월 결심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며 유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또한 ▲간첩단 우두머리로 지목된 진두현씨 ▲사형당한 김태열씨 ▲강을성씨와 공소사실 대부분을 공유하는 박기래씨 등은 최근 재심 무죄가 확정됐다. 이날 재판부도 강을성씨가 적법하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 구금돼 위법한 수사를 받았고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이후 조사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태에서 자백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강씨 진술의 증거능력을 모두 부인한 것이다. 그의 법원 진술이나 다른 공동피고인의 진술 증거 역시 같은 이유로 증거능력이 배척됐다. 결론은 무죄였다. 재판장의 통렬한 반성... "오류 범한 사법기관의 일원으로 사죄와 위로" 강민호 재판장은 무죄 선고 이후 재판을 바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판결 선고와 관련해서 재판부가 판단하면서 사건을 보면서 느꼈던 부분들에 관해서 재심청구인 유족들에게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다"라고 했다. 판결문에 담지 않은 소회라고 부연한 뒤,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강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지금, 저희 재판부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비록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는 하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고 너무 늦어버렸다는 점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과거 사법부가 북한과의 극심한 이념적 대결이라는 시대 상황이나 국가의 안위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는 데 너무나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이념의 잣대가 진실의 눈을 가리고 군부가 지배하던 시절에도 사법부만큼은 인권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어야 했을 것 같으나,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