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이 사과할 때까지, 이 이름을 잊지 않겠습니다

1976년 1월 26일, 국가가 지워버린 이름 1976년 1월 26일. 요즘 같은 기록적인 한파가 서울의 골목마다 차갑게 내려앉던 그날 아침, 차가운 사형장에서는 한 남자의 생명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다. 이름은 강을성. 국가가 그에게 붙인 죄명은 '간첩'이었다. 그 서슬 퍼런 두 글자는 단지 그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남겨진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 거대한 태풍이 되었다. 남편을 잃은 아내는 평생 '간첩의 아내'로 불리며 세상의 눈을 피해 살아야 했고, 어린 자녀들은 아버지가 왜 사라졌는지도 모른 채 '빨갱이 자식'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죄인 아닌 죄인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2026년 1월 19일 오전 10시 50분, 서울동부지방법원 501호 법정. 숨죽여 판사의 판결문 읽는 목소리만이 울리는 그 법정 안에서 마지막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진 "피고인 무죄"라는 네 글자는 50년 전 지워졌던 그를 다시금 우리 곁의 '사람'으로 불러냈다. 하지만 이 뒤늦은 선언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보안사의 지하실, 부서진 엘리트 장교의 꿈 사건의 시작은 1974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대위로 복무하던 강을성은 군 내부에서도 촉망받는 엘리트 장교였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했던 젊은 군인의 꿈은, 그러나 영장도 없이 들이닥친 보안사 요원들에 의해 무참히 부서졌다. 육군 보안사령부는 그를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핵심 인물로 조작해냈다. 보안사의 어두운 지하실로 끌려간 그는 인간의 존엄이 완전히 배제된 공간을 마주해야 했다. 몽둥이질은 일상이었고, 며칠 밤을 잠 한 숨 재우지 않는 고문이 이어졌다. 영혼을 짓밟는 협박과 가혹행위 속에서 그는 결국 하지도 않은 일들을 '자백'했다. 국가는 그 허위 자백을 근거로 사형을 선고했고, 사건 발생 후 단 2년 만에 집행까지 끝내버렸다. 기록조차 부실했던 시절, 국가는 촉망받던 젊은 군인의 생명을 빼앗는 데 그 어떤 주저함도 없었다. "너무 늦어버린 정의"... 재판부의 뼈아픈 참회 이번 재심 재판을 맡은 형사11부 강민호 부장판사의 선고는 단순한 법리적 판단을 넘어선 재판부 일원으로서의 반성문이었다. 재판장은 판결문을 낭독한 뒤, 이례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해 개인적 견해라며 사법부의 과오를 반성하는 소회를 밝혔다.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지금, 재판부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피고 비록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하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 후 너무 늦어버린 정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강 판사는 과거 사법부가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를 방기했음을 인정했다. "이념의 잣대가 진실의 눈을 가리거나 공포가 지배하던 시절에도, 사법부만큼은 인권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생명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이념적 도구로 삼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오늘의 무죄 선고가 고인의 영혼을 달래고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멍을 조금이나마 씻어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법관이 법정에서 고개를 숙여 사죄하는 모습은, 50년 전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법정이 이제야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