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로 창문 가리고... 충북 최대 학생독립항쟁의 시작

- [1편] "조선인은 야만인" 일본인 교장에 맞서 동맹 휴학한 학생들 https://omn.kr/2grcg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한 학생운동의 불길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1930년 1월 21일 충북 청주에서도 쌓이고 쌓였던 불만과 원한이 '광주학생만세', '대한독립만세'의 함성과 함께 터져 나왔다. 청주 시가지에는 청주고등보통학교(현재 청주중학교와 청주고등학교), 청주공립농업학교(현재 청주농업고등학교), 청주고등여학교 학생 550여명의 만세 소리가 가득했다. 수천 장의 격문이 뿌려졌고 학생들의 외침은 청주를 뒤흔들었다. 1919년 3·1만세항쟁과 1920년대 동맹휴업투쟁을 거치며 학생들이 독립투쟁의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등장하던 순간이었다. 청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이 역사적인 순간의 주인공이었다. 1930년 1월 20일 비밀리에 격문을 인쇄하다 국가보훈처가 제작한 이인찬(李仁粲, 1909~1998, 대통령포창) 선생과 박우양 (朴遇陽, 1912~?, 대통령 표창)선생 공훈록에 따르면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와 청주공립농업학교, 청주고등여학교 3개교의 연합 동맹휴학 투쟁은 사전에 철저히 기획됐다. 정확한 시기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3개교 연합맹휴투쟁은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 3학년 이인찬(李仁粲), 박우양(朴憂陽)과 청주공립농업학교 박노섭(朴魯燮) 등이 만나 광주학생운동 지지운동을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거사 일을 하루 앞둔 그해 1월 21일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 3학년생 이인찬(李仁粲)은 학교에서 등사판을 가지고 나와 이범승(李範승)과 함께, 박우양(朴憂陽)의 집에서 비밀리에 격문을 등사했다.이들은 불빛이 새어 나갈까봐 이불로 창문을 가리고 숨죽이며 말 한마디 않은 채 격문을 인쇄했다. 그렇게 충북 최대의 학생독립항쟁이 시작되다. 1월 21일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오전 9시 30분 청주고등보통학교 1‧2‧3‧4학년 학생 전부가 어깨동무를 하며 교문을 박차고 나갔다.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이 막아섰지만 학생들은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청주고등보통학교 학생 270여명이 참여했다.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격문을 뿌리며 '독립 만세', '학생 만세', '광주학생 만세'를 외쳤다. 교문을 나선 학생들이 향한 곳은 이웃한 청주공립농업학교였다. 청주공립농업학교에서도 230여명의 학생이 어깨동무를 하고 교문 밖을 나왔다. 당시 일본인학교였던 청주고등여학교에 재학중이던 조선인 여학생 40명도 함께했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자, 청주시내에 있던 상가들도 문을 닫고 학생들을 응원했다. 당시 조선총독부 청주경찰서는 관내 모든 경찰력을 동원해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막으며 닥치는 대로 검거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