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건너온, '묻따박스'에서 발견한 남자의 카메라

경계선 위에 선 존재 역사에는 언제나 '문턱'이라 불리는 지점이 존재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수동에서 자동으로,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넘어가는 그 미묘하고도 불안한 경계. 그 위태로운 선 위에 서 있는 존재들은 대개 완성형이라기보다는 실험형에 가깝다. 완벽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겠다는 뜨거운 열망과 과거의 유산을 놓지 못하는 투박한 고집이 공존하는 시기. 니콘(Nikon)의 카메라 역사에서 그 문턱을 지키고 있는 존재가 바로 F-501이다. 니콘의 최초 AF(Auto Focus) SLR은 F-301이라는 이름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마치 책장을 넘기듯, F-501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자동 초점의 시대가 열렸다. 겉모습만 보면 녀석은 여전히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는 듯하다. F3나 FM2가 보여주었던 그 각진 어깨, 남성적인 실루엣, 타협을 모르는 직선의 미학. 하지만 그 단단한 껍질 안쪽에는 전혀 다른 리듬이 흐르고 있었다. 톱니바퀴와 스프링이 지배하던 기계식 제국이 저물고, 회로와 모터가 지휘하는 전자식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카메라를 머릿속의 '개념'으로만 박제해 두었었다. '니콘이 전자식 시대로 진입하던 시작점', '최초의 대중적인 AF기'. 정보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내 손바닥 위에서 어떤 온도를 가질지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역사책 속의 인물처럼, 알지만 만질 수 없는 존재였다. 더미 속에서 발견한 묵직한 밀도 만남은 예고 없이, 그리고 지극히 현대적인 도박의 형태로 찾아왔다. 일본 옥션의 일명 '묻따박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크로 분류된 카메라들을 라면 상자에 무작위로 쓸어 담아 보내는 그 야생적인 거래 방식.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다. 녹슨 고철 덩어리일지, 아니면 긴 잠에 빠져 있는 보물일지. 해외 배송된 낡은 골판지 상자를 칼로 긋던 순간의 그 묘한 설렘을 기억한다. 먼지 냄새와 오래된 기계유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 혼돈의 더미 속, 렌즈도 없이 덩그러니 누워 있는 F-501을 발견했다. 첫인상은 '플라스틱'이었다. 1980년대 중반, 원가 절감과 경량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금속 대신 플라스틱이 카메라의 외피를 두르기 시작했던 시절. 사용감이 묻어 있는 그 검은 표면은 어딘가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손을 뻗어 바디를 쥐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볍지 않았다. 단순히 무게의 그램(g) 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아귀를 꽉 채우는 밀도(密度)의 감각. 겉은 플라스틱일지언정, 그 안에는 니콘이 수십 년간 쌓아온 광학 기기의 뼈대가 고스란히 들어차 있었다. "남자는 니콘."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혹은 신화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새를 찍기 위해 숲에 들어갔다가 곰을 만나면 카메라로 내려쳐서 쫓아낸다는 둥, 망치가 없을 때 FM2로 못을 박았다는 둥. 그 과장된 무용담들이 뇌리를 스쳤다. F-501은 비록 과도기의 산물이지만, 그 '단단함'의 DNA만큼은 타협하지 않았음을 손끝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명백한 '도구'였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