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김모(82) 씨의 하루는 이웃의 안부 인사로 시작된다. 거동이 불편해 집 밖에 나서지 않은 날이면 어김없이 누군가 대문을 두드린다. “병원 한 번 다녀오기 어려운 마을이라지만 내겐 서울보다 안전해. 적어도 혼자 숨을 거둘 일은 없으니까.” 김 씨의 말은 지역에 대한 애착을 넘어 대도시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단면을 보여준다. 인구 감소 지역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와 정주 의사(계속 살고 싶은 마음)가 전국 평균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2일 한국인구학회 학회지 최신 호에 실린 ‘지역사회조사 주관 지표 분석’에 따르면 89개 인구 감소 지역 주민의 정주 의사는 4.047점으로 전국 평균(3.761점)을 웃돌았다. 전반적 삶의 만족도 역시 6.454점을 기록해 전국 평균(6.393점)보다 양호했다. 공동체가 메운 ‘생활 여건’의 빈자리 소득 만족도(2.868점)나 주거환경 만족도(3.388점) 등 객관적 생활 여건 지표는 모두 전국 평균을 밑돌았지만 이를 보완하는 요인은 ‘공동체’였다. 공동체 의식 점수는 3.282점으로 전국 평균(2.842점)보다 높았고 일반인에 대한 신뢰도 역시 전국 평균을 상회했다. 물적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촘촘한 관계망이 이를 일정 부분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특성은 대도시의 고질적 문제인 고독사와 비교할 때 더 선명해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체 고독사의 52.2%가 서울·경기·부산 등 대도시권에 집중됐다. 반면 전남(2.5%), 충북(3.3%), 강원(3.4%) 등은 고독사 비율이 2~3%대에 그쳤다. 인프라가 밀집했지만 관계망이 취약한 도시와 달리 인구 감소 지역은 유대감을 기반으로 고립을 완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동체의 힘은 의료 공백까지 메우지 못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감소 지역 89곳의 자살률은 10만명당 36.3명으로 전국 평균(29.1명)보다 7.2명 높았다. 자살률 상위 10개 지역은 모두 인구 감소 지역이었으며 충남 청양군은 60.3명, 강원 홍천군은 59.9명으로 집계됐다. 자살률·건강수명…수치가 드러낸 의료 공백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농촌 지역 자살 예방을 위한 과제’ 보고서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2023년 기준 농촌 자살률은 도시보다 1.2배 높았고 65세 이상이 전체 자살 사망의 40%를 차지했다. 노인 자살은 우울증·만성 질환·사회적 고립·경제적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인구 감소 지역은 의료시설 부족과 교통 불편으로 조기 개입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건강수명 격차도 뚜렷하다. 2022년 기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건강수명은 평균 72.85세였지만, 전남 해남(63.57세), 전북 고창(64.36세), 부산 영도(64.26세)는 60대 초중반에 머물렀다. 지역 간 건강수명 격차는 최대 9~10년에 이른다. 삶의 만족도와 별개로 신체 건강 지표에서는 분명한 격차가 확인된다. 결국 높은 정주 의사는 공공 지원의 성과라기보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공동체를 기반으로 일상을 유지해온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구진은 인구 감소 지역을 ▲생활 여건 양호형 ▲저활력 기초복지형 ▲공동체 친화형 등으로 세분화해 맞춤형 지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순한 인프라 확충을 넘어 공동체 자원을 유지하면서 의료 접근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