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전두환의 '역린'을 건드린 뒤에 벌어진 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는 비서관인 전두환에게 군인이 아닌 정치인의 길을 제안했다. <전두환 회고록> 제3권은 제6대 총선이 있었던 1963년에 "박 의장이 나를 부르시더니 군으로 돌아갈 것 없이 예편해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한다. "저는 군이 좋습니다"라고 말하는데도 박정희가 계속 강권하자, 전두환은 "그럼, 집에 가서 집사람과 의논해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에 박정희는 안색을 바꿨다. "나는 전 대위를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제 보니 형편없구만"이라며 "아니, 그런 일을 집에 가서 안사람과 상의하겠단 말인가"라고 그는 말했다. "알았으니 이제 그만 가봐"라는 말로 이 대화는 끝났다. 전두환은 군부 정당의 의회 장악을 위한 박정희의 출마 지시는 거부했지만, 그의 또 다른 지시만큼은 철저히 수행했다. 1963년 그해에 전두환은 박정희의 밀명에 따라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하고, 4년제 육사의 출발점인 육사 11기 이하의 장교들을 그 뒤 은밀히 끌어들였다. 전두환과 하나회를 위협했던 군인 육사 2기인 박정희는 육사 5기(정승화 등)와 육사 8기(김종필 등)의 도움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나회는 박정희가 이 구도에서 벗어나 직속 파벌을 갖게 하는 데 기여했다. 육사 11기에서 20기까지만 해도 약 120명이 이 파벌에 흡수됐다. 한 기수에서 12명 정도가 포섭됐던 것이다. 하나회 회원들은 박정희의 배후 지원 속에 군부 요직을 하나둘씩 차지했다. 그렇게 확보한 요직은 그들 내에서 대물림됐다. 일례로, 청와대 경비를 담당하는 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 직은 하나회 소속인 손영길(11기)·전두환(11기)·박갑룡(11기)·이종구(14기)·고명승(15기)·장세동(16기)·김진영(17기)에게 차례로 넘어갔다. 이처럼 군부 내에 또 다른 군부가 암약하는 실상을 온 세상에 드러낸 군인이 강창성(1927~2006)이다. 지난달 3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전두환 정권하에서 징역 3년 및 몰수형과 추징선고를 받은 강창성에 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재심의 대상이 된 판결은 1981년 4월에 확정된 유죄선고다. 해안항만청장 재직 시절의 비리 및 금품수수 혐의가 유죄선고의 근거가 됐다. 그런데 강창성이 유죄선고를 받은 실질적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는 육군보안사령관 재직 시절에 '윤필용 모반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하나회의 존재를 인지한 뒤, 모반사건보다 하나회 사건을 중점적으로 수사했다. 이로 인해 전두환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였다고 볼 수 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