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월북'만큼 치명적인 낙인이 또 있을까. 정치인이든, 예술가든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조국을 배반한 사람들로 인식된다. 오로지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독립운동가들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이들은 마치 '호적에서 이름을 파듯' 독립운동사에서 이름을 지웠고, 그들의 독립운동 공적은 통째로 무시됐다. '친일'보다 '친북'이 더 나쁘다는 부박한 인식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친일 청산에 실패한 역사의 후과다. 38도선 이남에서 나고 자란 인물들 김두봉, 김약수, 김원봉, 박헌영, 백남운, 이여성, 홍명희 등. 우리에겐 '빨갱이'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하지만, 하나같이 시대를 풍미했던 '거물급' 독립운동가들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영역에서 한 번쯤 거론되는 인물들로, 모두 38도선 이남에서 나고 자랐다. 월북이라는 '흠결'만 빼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서 그들의 업적은 청사에 빛난다. 김두봉은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이자 '말모이 운동'을 이끈 국어학자다. 김약수는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을 주도했으며, 의열단의 '의백' 김원봉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불세출의 독립운동가다.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사회주의 혁명가 박헌영과 일제 식민사관을 논파한 경제사학자 백남운의 위상도 남다르다.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끈 이여성은 화가이자 학자로서도 이름이 높다. 홍명희는 대표적인 항일 언론인이자 소설 <임꺽정>은 저술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들의 공적을 감춘다면 자랑스러운 우리 독립운동사는 반쪽짜리로 전락하게 된다. 정부가 건국 훈장을 수여하지는 못할지언정 차마 그들의 이름을 교과서 등에서 삭제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저 월북으로 인해 그들 스스로 이름에 오점을 남겼다는 식으로 눙칠 따름이다. 그나마 그들의 이름을 교과서에서라도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정작 태어난 고향에서 그들의 흔적은 깨끗이 지워졌다. 아는 이도 없을뿐더러 안다고 해도 여전히 답하길 꺼린다. 서슬 퍼런 연좌제의 굴레 속에 친인척들은 모두 떠났고, 무심한 세월 속에 집성촌은 와해되었다. 과거 영화 <암살>과 <밀정> 등에서 카메오로 출연해 이름을 널리 알린 김원봉의 사례 정도가 예외다. 지방정부는 그의 생가터에 '의열기념관'을 건립하여, 경남 밀양이 그의 고향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이었음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적어도 그곳에서 월북의 낙인은 찾아볼 수 없다. 월북한 후 북한 정권에서 부수상을 역임했던 홍명희의 경우엔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충북 괴산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긴 하지만, 그의 이름을 앞세우진 못한다. 대신 그의 선친인 홍범식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홍범식은 국권 피탈 직후 자결로서 일제에 저항한 우국지사다. 그렇듯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덕에 관광객 유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혈족 내 명망가를 둔 경우가 아니라면, 현재로선 월북을 상쇄할 수 있는 공적이란 없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남과 북이 통일되거나 적어도 우리 안에 잠재된 분단의 모순이 극복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아이의 질문 "선생님, 이쾌대가 무슨 뜻이에요?"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