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15일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는 유럽 동맹국들의 역할 확대를 분명히 요구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재래식 방어에서 유럽이 더 주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며, 한국을 그 방향의 선례로 언급했다. 한국이 국내총생산 대비 3.5% 수준의 국방 지출을 약속하고 한반도 재래식 방어에서 주된 책임을 감당하려 한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뮌헨안보회의는 단순한 토론의 장이 아니다. 1963년부터 이어져 온 이 회의는 각국 정상과 국방·외교 책임자들이 모여 국제 안보의 흐름을 점검하는 자리이며, 이곳에서 제시되는 언어는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 회의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개념은 시간이 지나 정책과 제도 속으로 스며드는 경우가 많다. 이번 발언 역시 외교적 예의 차원의 언급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이 동맹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앞으로의 책임 배분 구조가 달라지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장면으로 읽힌다. 한국이 선례로 거론된 배경에는 단순한 국방비 수치 이상의 구조적 변화가 놓여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안보를 바라보는 틀부터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안보는 하나의 힘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쟁을 막는 힘과, 전쟁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이를 감당하는 힘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 이 구별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국제정치학자 글렌 스나이더는 이미 반세기 전, 억제와 방어를 구분하며 국가안보의 구조를 설명했다. 억제는 상대의 결정을 바꾸는 힘이고, 방어는 억제가 실패했을 때 피해를 줄이는 힘이라는 정의는 오늘도 유효하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 구분을 한 단계 더 세밀하게 만들 것을 요구한다. 방어라는 이름 아래에는 전투 수행뿐 아니라, 전쟁을 지속하게 만드는 생산과 보급의 문제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 장비는 소모되고, 탄약은 고갈되며, 전력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어야 한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듯, 승패는 누가 더 정교한 무기를 가졌는가보다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억제의 신뢰성과 지속의 현실성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