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왜 연설문에 '표식'을 하지 않는가"

책의 첫 페이지를 열자, 2026년 이재명 대통령의 신년사가 나온다. 그런데 그 위에 손글씨로 쓴 표식(表式)이 눈길을 끈다. 연설문 끝 부분에는 '표식은 스피치의 시작이다'라는 글과 함께 장음, 단음, 강세, 포즈(pause) 등의 기호에 대해 설명을 해 놨다. "베테랑 성우도 대본에 표식을 한다. 어디서 힘을 주고, 어디서 숨을 쉬고, 어디서 침묵할 지. 그런데 정치인들은 왜 연설문에 표식을 하지 않는가." 33년 동안 마이크 앞에 서온 MBC 성우 양희문의 말이다. 수많은 내레이션 녹음과 라디오 드라마를 연기하면서 그가 체득한 건 '말은 문자가 아니라 소리이고, 소리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 감정이 듣는 이에게 와닿을 때, 비로소 '스피치'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스피치는 감정의 발산"이라고 확신한다. 올해 2월에 출간된 양희문의 <대통령의 스피치>(메디치)는 감정의 발산이 확산되는 궤적을 국내·외 역대 대통령들의 스피치 사례로 보여준다. 전두환에서 이재명까지, 링컨에서 트럼프까지, 바람직한 사례와 아쉬운 사례를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양희문의 연설 분석은 수사학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그 말에 체온이 느껴지는가, 그 목소리에 진심이 실려 있는가, 듣는 이에게 어떤 울림과 여운을 남겨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스피치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 저자가 맨 먼저 거론한 것은 '스피치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는 점이다. 화려한 수사도, 정교한 논리도, 낮은 자세 없이는 청중들에게 와닿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현직 대통령들의 '스피치 태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때로는 절름거리는 발걸음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국민을 향해 스피치를 했던" 지도자다. 몸에 새겨진 상흔이 곧 언어가 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굽은 팔과 찔린 목의 상흔도 비(非)언어적인 스피치다. 그들의 몸은 말보다 먼저 도착해 청중의 마음에 이미지를 새겼다. 비단 말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스피치"다. 반면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의 위압적이고 경직된 화법은 폭압적 통치의 거울이었다. 저자는 "유권자가 대통령의 화법을 유심히 살피는 것만으로도 정권의 성격과 통치 방식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도자의 말이 국가의 상태를 드러내고, 사회의 표정을 규정하는 '공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