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월경통이 심해 항상 진통약을 먹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월경통과 허리통증이 심해서 진통제를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열도 조금 나긴 했지만 몸살 기운 또한 매번 있었으니까 평범한 증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결국 집에서 걷지 못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당시 서 있기도 어려워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에 간신히 갔는데, 병원에서는 등을 몇 번 쳐보고 체온을 재더니 "왜 이제야 왔냐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급성 신우신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생전 처음 들어본 질환이었다. 무서운 것은 보통 내가 겪는 월경통도 이 정도 수준이기에 다른 질환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1주일을 입원해 치료받았다. 갑작스럽게 입원했기에 병원에서 업무를 이어갔고, 병원비를 걱정하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에게 내 질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어렵게 다가왔다. 병원에서는 피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본 신우신염의 여러 원인들 중 하나는 성관계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설명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입원하는 동안 매일 토하고,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는데 그 와중에 혹시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 걱정하며 위축될 수밖에 없다니 씁쓸했다. 그 일은 내 몸, 정확히 말하면 몸 안에서 있을 수 있는 변화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것이 내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할 때, 아픔 이외에 내가 감당해야 할 두려움의 영역 역시 상당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의 변화에 대한 평가에는 사회적 규범, 고정관념이 반영된 '성차'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낙태죄',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내게 '낙태죄'는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구든 그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예감하고, 나 또한 그 경계에 선 사람일 수 있다는 감각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추상적인 말이지만 나는 내가 '잘 살아간다'면 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낙태죄'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 과정에서 고민 끝에 내가 결정한 것이 사회적으로 죄가 되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단순한 결정이 아니었다. 임신중지는 죄가 아니며,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그 이후, 제도적 논의와 지원, 입법은 여전히 '공백'이지만 말이다. 그간 임신중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정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들이 있기에, 누구도 그 결정을 감히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후 그 사람들은 결혼을 하여 출산을 하기도 하고, 가족 구성을 선택하지 않고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임신중지는 이미 여러 사람들의 생애사에 자리잡혀있고, 내가 속한 세대뿐만 아니라 과거의 엄마 세대에게도, 지금을 살고 있는 10대, 20대 여성들이 마주하게 되는 일상이기도 하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