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서도 시민권을 요구하는 사람" 언젠가 챗지피티가 나에 대해 한 놀라운 표현이다. 관계 속 권력, 책임, 노동의 분배를 읽는 능력이 있다면서, 이는 능력임과 동시에 정치적 감각이라고 챗지피티답게(?) 나를 추켜세웠다. 지난해 여름부터 내가 운영하는 책방에서 '페미니즘과 일상 속 평등한 관계맺음'이라는 이름의 독서모임을 운영해오고 있다. 남성의 소통방식, 관계맺기 방식의 한계를 탐구하고, 이것이 어떻게 일상에서 평등한 관계맺음을 가로막는지, 특히 남성과의 친밀한 관계가 어떻게 불평등한 구조로 흘러가고 고착화되는지 등을 탐구하는 중이다. 물론 나는 예전부터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지만, 사회문제로서 페미니즘 이슈를 읽는 것과 나의 미시적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읽고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이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해당된다). 챗지피티가 칭찬한(?) 후자의 감각은 반년 이상 진행해 오고 있는 위 독서모임을 통해 키우는 중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다" 최근에는 페미니스트 사회운동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벨 훅스가 쓴 <올 어바웃 러브>를 함께 읽었다. 책의 핵심 메시지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사랑'에 대한 통념과 다르다. 우리는 대개 사랑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신비로운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벨 훅스는 사랑은 "무의식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하여 "행하는 것"이라고 하여 '실천'이 사랑의 핵심임을 분명히 짚는다.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할 때 생기는 정서적인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든 다른 사람을 사랑하든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고 정적인 감정의 영역을 넘어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실천인 것이다. 사랑을 위해 실제적인 행동을 할 때 자기 비하나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랑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길을 따라 구체적인 단계를 밟아갈 때 얻어진다. <올 어바웃 러브> 211쪽 사랑에 대한 모호한 정의는 단지 틀린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의 윤리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앗아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사랑을 그저 알 수 없고, '저절로',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무언가로 이해하는 한 당사자들의 의식적 노력이 당위적으로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친밀한 관계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정도 그렇고 친밀한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친밀한 관계는 식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 물을 주고 햇볕을 쐬어주고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채로 깊은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친밀함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 행동, 실천이 관계 안에서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성애 연애 관계에서는 통상 여성이 이에 대해 많은 부분을 짊어지고 있으며, 남성은 이러한 실천에 무감하다(의도적일 수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중요한 건 지금 누군가가 차별받고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이 편면적으로 수행하는 감정노동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