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딸아이의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저녁, 아내가 툭 던진 한마디였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서운함과 설렘, 막연한 부채감이 섞여 있었다. 지난 토요일 낮, 나는 후배 교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제 막 삶의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젊은 부부를 축복하며 기쁘게 박수를 보냈다. 남의 딸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일주일 뒤 내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예식이 끝나자마자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은 학교였다. 개학을 코앞에 두고 진행 중인 공사와 대청소 현장을 점검해야 했기 때문이다. 먼지 섞인 소음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교정에서 한참을 보낸 뒤에야 늦은 퇴근을 한 터였다. 몸은 고단했지만, 아내의 그 '툭 던진 말'의 무게를 알기에 나는 기꺼이 답했다. "좋지. 일요일에는 뭐든 하자." 주변에서는 "딸 결혼시키느라 바쁘시겠어요"라며 인사를 건네오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요즘 결혼은 당사자들이 주인공이자 기획자이고 감독이다. 부모의 역할은 그저 '조연'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내리는 의사 결정에 신속하게 답해주고, 요청하는 대로 따르는 '행정 지원팀'이랄까. 자식의 독립이란 부모가 제 권한을 스스로 삭감해 나가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고요한 정거장을 찾다 우리 부부는 종교가 없지만, 삶의 큰 매듭을 짓거나 치르고 난 뒤에는 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 삼정헌(三鼎軒)을 찾곤 했다. '세 발 달린 솥'이라는 이름처럼 차와 사색과 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곳은, 방문객 누구에게나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는 무인 찻집이자 마음의 쉼터다. 우리에게 이곳은 삶의 마디마다 흐트러진 호흡을 정돈하던 고요한 정거장이었다. 일요일 오전, 차가 막히기 전 집을 나섰다.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면 '해탈문(解脫門)'이 우리를 맞이한다. 속세의 번뇌를 벗어던지고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상징적 문이다. 전날 낮에 보았던 후배의 예식장 풍경도, 학교 현장의 소란스러움도 이 문 뒤에 잠시 부려 놓고 싶었다. 삼정헌에 앉으면 사람들은 말이 없어진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눈을 감고 내면의 소란을 비워낼 뿐이다. 그 무렵, 산사에는 비가 흩뿌렸다. 빗줄기 때문인지 안개 때문인지, 삼정헌의 너른 창 너머로 펼쳐져야 할 두물머리는 형태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득했다. 강물도, 산세도 모두 희뿌연 장막 뒤로 숨어버렸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