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민주주의'는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인류 문명의 요람인 아테네에서는 물론 법치주의 기틀을 닦은 로마 공화정에서도 사법권의 핵심에는 '동료 시민'이 있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재판관이 되어 다수결로 유무죄를 결정했다. 법을 공부한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모여 재판을 진행한 것이다. 이는 "사법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라는 민주주의 본질을 보여준다. 시민 재판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민주 정의의 핵심 원리였다. 로마 공화정에서도 상설 배심재판소(quaestiones perpetuae)를 두고 시민이 동료 시민의 운명을 결정했다. 이는 사법이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시민의 보루여야 함을 역사적으로 보여준다. 17세기 프랑스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전통적 3권분립론을 제시하면서도, 정부 사법권의 전횡을 경계하며 시민 배심제를 적극 제안했다. 최자영 전 부산외대 교수는 "요즘 회자되는 사법독립이란 '대법원장으로부터 인적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지 사법 기관 독점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몽테스키외도 사법권의 민주적 통제를 강조했음을 상기시킨다. 세미나에 참여한 토론자들은 "헌법 제103조 '법관의 양심' 독립은 주관적 개념으로 인치(人治)로 흐를 위험이 있다"며 법률가의 독점적 사법이 아닌 시민의 상식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선진국들은 형사재판에서 일반 시민을 법적 의사결정 주체로 참여시킨다. 이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국민 주권을 실현하는 보편적 흐름이다. 미국·영국처럼 전통적 배심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물론 독일·프랑스·일본·대만 등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혼합재판부(mixed court)나 참여재판 형태로 시민이 판결에 관여한다. [영국] 배심제·참심제·치안판사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심원제를 갖고 있다. 영국의 시민 사법 참여는 배심제에 그치지 않는다. 배심제, 참심제, 치안판사제라는 3중 통로로 국민의 사법 주권을 보장한다. 김명식 조선대 교수는 '치안판사 제도는 영국 사법의 백미'라고 설명한다. 대부분 무보수·비전문 시민이 경범죄 사건의 95% 이상을 심리·판결한다. 또한 고용, 사회보장, 의료, 이민, 조세 등 전문분야 심판소(tribunal)에서는 해당 분야 비법률가 전문가들이 참심원(시민법관)으로 참여한다. 전문심판소 판사 1인과 전문가 참심원 2인이 함께 사건을 심리·결정한다. 현재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서 참심원 역할을 수행하는 시민전문가가 2022년 기준 3300명에 달하고, 민사재판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도 11만 명이 넘는다. 영국 사법권은 입법부 관할 아래 있어 독립이 아닌 통합·통제 측면이 강하다. 최자영 교수는 몽테스키외의 전통적 3권분립론조차 정부 사법권력을 경계하며 시민 배심제를 제안했다는 점에서, "사법독립은 대법원장으로부터의 인적 간섭 배제이지 기관 독점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독일] 명예법관(참심원) 독일의 참심원(Schöffe, 시민법관) 제도는 전문 판사 2~3명과 시민 법관 2명이 함께 재판부를 구성한다. 시민은 사실·법률 판단과 양형에 투표권을 가지며, 이는 나치 시대 전문가 독점 사법의 교훈에서 비롯됐다. 독일에서는 2020년 기준 참심원 수는 12만 3126명에 달했다. 유럽 대륙법계 국가들은 배심제 대신 참심제를 발명했다. 그때그때 무작위 추첨으로 뽑히는 배심원과 달리 참심원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임명되고 보통 3~4년의 임기를 가진다. 황치연 홍익대 교수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의 참심원 제도를 한국 현실에 직접 적용 가능한 모델로 제시한다. 핵심 메시지는 '사법권은 국민주권의 일부이며, 직업법관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공직자일 뿐'이라는 점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