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버린 텍사스
한국 반도체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하면 흔히 뜨거운 태양, 사막, 석유, 카우보이를 많이 떠올립니다. 실제로 텍사스는 기후가 대체로 온화한 편입니다. 휴스턴·오스틴 등 중남부는 아열대성 기후에 가깝고, 겨울 평균기온도 영상권입니다. 미국 내 최대 석유·가스 생산지 중 하나이고, 전력 요금이 낮아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이 많이 모여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2021년 2월, 이 통념을 깨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북극의 찬바람이 미국 중남부까지 내려오면서 텍사스 곳곳의 기온이 영하 20℃ 안팎까지 급락한 겁니다. 평소 혹한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던 텍사스는 발전·가스 설비가 동파되거나 멈춰 섰고, 갑작스러운 추위에 난방을 위한 전력수요는 급증했습니다. 텍사스는 워낙 자체 에너지가 풍부하다 보니 미국 안에서도 드물게 독립 전력망을 운영하는데, 이에 따라 다른 주와의 전력 연계가 제한적인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러운 전력 부족 사태에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고, 그로 인해 대규모 순환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날씨는 추운데 난방을 위한 전기의 공급이 끊기자 많은 이들이 추위로 인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2021년의 텍사스 한파는 공식 집계로 246명 이상이 추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자연재해 피해 중 하나입니다. 정전이 장기화하자 텍사스 주정부는 지역 내 대형 산업체에 전력 사용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사람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요. 가장 먼저 표적이 된 건 24시간 365일 가동을 전제로 설계된 반도체 팹입니다. 반도체 팹 하나가 발전소 하나 분량의 전기를 쓰니까 가동 중단에 의한 효과도 가장 큽니다. 이에 따라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의 팹은 1998년에 운영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가동을 멈춰야 했습니다. 삼성전자 외에도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NXP, 전력반도체를 만드는 인피니온, 아날로그·전력반도체를 생산하는 TI가 수일에서 수주간 팹 가동을 멈췄습니다. 반도체 공정은 표면에 아무것도 없는 순수 웨이퍼가 수 주 동안 수백 단계 공정을 거치며 회로를 새겨서 완성되는데, 워낙 미세한 회로를 그려내다 보니 환경에 민감합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클린룸 내부의 온도나 습도에 변화가 생기거나 장시간 팹 운영이 중단되면 공정을 진행 중이던 웨이퍼의 상태가 변해 상당수를 폐기해야 합니다. 업계 추산으로 삼성 오스틴 공장의 직접 손실만 수억 달러 규모였고, TI, NXP, 인피니온도 큰 생산 차질을 빚었습니다. 문제는 시점이었습니다. 2020년 하반기부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도입되면서 노트북 등 IT 기기와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급증했고, 전기차 전환과 함께 자동차용 반도체 수요도 빠르게 늘던 때였습니다. 안 그래도 수요는 늘고 공급은 따라가지 못하던 상황에서 IT산업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생산하는 텍사스의 주요 팹이 동시에 멈춘 겁니다. 전체 내용보기